시읽는기쁨

등잔 / 신달자

샌. 2010. 9. 14. 10:56

인사동 상가에서 싼값에 들였던

백자 등잔 하나

근 십 년 넘게 내 집 귀퉁이에

허옇게 잊혀져있었다

어느 날 눈 마주쳐 고요히 들여다보니

아직은 살이 뽀얗게 도톰한 몸이

꺼멓게 죽은 심지를 물고 있는 것이

왠지 미안하고 안쓰러워

다시 보고 다시 보다가

기름 한 줌 흘리고 불을 켜보니


처음엔 당혹한 듯 눈을 가리다가

이내

발끝까지 저린 황홀한 불빛


아 불을 당기면

불이 켜지는

아직은 여자인 그 몸


- 등잔 / 신달자


시인이 쓴 수필집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를 읽고 가슴이 아렸다. 남편의 뇌졸중, 24년 동안의 병수발, 낙상으로 쓰러진 시어머니 간병 9년, 본인의 유방암 투병 등, 운명이 어찌 이렇게 가혹할 수 있을까. 그러나 시인은 스스로의 표현대로 바보처럼 그 모든 시련을 감내하고 극복했다. 대학원에 입학하고,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된 것도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한 싸움이었는지 모른다. 지금은 희망을 말하지만, 운명과 화해를 했다지만, 그 모든 게 아프고 안쓰러웠다.


삶의 고통에 대해 생각한다. 유난히 더 아프게 살아야 하는 사람도 있다. 며칠 전에는 웃음소리가 들린다고 가정집에 들어가 살인을 한 이가 있었다. 행복해 보이는 게 미워서 그랬단다. 졸지에 날벼락을 맞은 그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다. 인간의 삶은 잔인한 운명의 희롱 앞에서 너무나 무력하다. 견디기 힘든 큰 고통일수록 아무런 이유도 없이 찾아온다. 고통은 인간 존재의 한계를 드러내주는 징표다. 쉽게 고통의 미학을 지껄일 수는 없다.


생의 시련을 겪으며 무너지는 사람도 있고 버텨내는 사람도 있다. 시인은 강인한 정신력으로 일어섰다. 어떤 난관에서도 스스로를 정화하고 승화시키는 능력은 인간 영혼의 위대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바람에 꺾인 나무든 숲을 지키는 나무든 똑 같이 연민이고 아픔이다. 그것이 생명을 가진 존재의 숙명인 것 같다.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열심히 살았고, 열정을 잃지 않았고, 무너진 산에 깔려 있으면서도 사랑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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