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가끔은 세상이 환하다 / 차옥혜

샌. 2010. 9. 28. 10:49

친구 영숙이는 나이 50이 넘어 간호사 자격증을 따고

좋은 수입을 올리던 외과의사 남편과 함께

사택으로 10여 평 아파트와

두 사람 합쳐 월급 100$을 받기로 하고

카자흐스탄 알마타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의료봉사 길을 떠났다


알마타이 대평원엔 긴 겨울 내내 눈이 덮이고

시내엔 오전 내내 자욱한 안개 속에서

나무마다 얼음꽃이 피고

집 없는 사람들이

동상 걸린 발을 질질 끌며 서성거린다고

치료받으러 온 동상 환자의 양말이

발바닥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살과 함께 도려낸다고

환자들 몸에서 이가 뚝뚝 떨어지고

어떤 환자의 몸은 일부가 썩어 구더기가 우글거리고

상처 냄새가 분뇨 냄새보다 심했다고

어떤 환자들은 약을 주면 팔아 빵을 산다고

의료봉사 틈틈이 야채를 길러 팔아

병원 재정에 보태야 한다고

편지지가 없어 인쇄종이 뒤에 써 보낸

영숙이의 편지


캄캄한 먼 나라 등대지기 영숙이 부부


- 가끔은 세상이 환하다 / 차옥혜


날 부끄럽게 하는 분들이 있다. 내 한 몸 보전하기도 힘들어 허덕이는데 이분들은 자기를 버리고 불쌍하고 소외된 이웃에게로 들어간다. 등대 같은 이런 분들이 있어서 세상은 아직도 환한가 보다.


‘울지마 톤즈’라는 다큐영화가 개봉되었다. 이태석 신부님을 그린 영화다. 신부님은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으나 신학교에 들어가 사제의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아프리카 수단의 톤즈로 가서 가난하고 버림 받은 원주민들과 함께 살았다. 병원과 학교를 짓고 전쟁의 상처로 얼룩진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 브라스밴드까지 만든다. 한센병 환자들과도 스스럼없이 손을 잡으며 함께 한다. 자신이 어릴 때 존경했던 슈바이처의 삶을 실천한 것이다.


신부님은 휴가로 귀국해서 검진을 받다가 암에 걸린 걸 알았다. 이미 암세포가 온 몸에 퍼진 상태였다. 그래도 신부님은 ‘고통의 특은(特恩)’이라며 감사해 했고 톤즈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했다. 결국 올 초에 신부님은 48세의 나이로 하느님의 품에 안기셨다. ‘KBS 스페셜’에서 신부님의 수단 생활과 신부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슬퍼하는 그곳 주민들 모습이 방영되어 감동을 준 적이 있다.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슬프고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신부님은 아무리 밤늦게 환자가 찾아와도 한 번도 싫은 내색 없이 웃는 낯으로 맞았다고 한다. 몇 시간을 걸어서 찾아오는 환자를 생각하면 그럴 수 없다고 하지만 신부님도 사람인데 어찌 짜증나는 일이 없었을까. 모든 것에 인내하며 희생하는 삶이 신부님 자신에게는 독이 되었는지 모른다. 너무 일에 집중하다보니 정작 자신 몸의 이상신호는 알지를 못했다.


아버지를 잃었다며 눈물을 쏟는 톤즈의 아이들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신부님의 안식을 기도드리며 신부님의 글 한 편을 읽어본다. ‘사랑은 기다림’이라는 신부님의 말씀이 아프게 다가온다. 꼴통들 때문에 힘들다고 불평하지만 나 역시 하느님 앞에서 또다른 꼴통이 아니던가.


'마족'은 나이는 8살 정도인데 속에는 80살 노인네가 들어앉아 있습니다. 부모 친척이 없는 고아라서 저희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은 방학인데도 갈 곳이 없어 그냥 기숙사에 있습니다. 생긴 것과는 달리 엄청난 말썽꾸러기 입니다. 얼마나 게으른지 챙기지 않으면 열흘도 좋고 한 달도 좋습니다. 절대 씻지 않습니다. 크리스마스라 씻고 나온 얼굴이라 사진엔 괜찮게 나온 편입니다. 왜 그렇게 학교는 가기 싫어하는지, 숨는데 귀신이라 매일 아침 숨바꼭질해가며 보내는데도 일주일에 두 세 번은 가지 않습니다.


아이들과 싸울 땐 절대 주먹으로 하지 않습니다. 그냥 주위에 있는 돌로 해결을 해 버립니다. 왼쪽 팔다리에 약간의 마비기가 있어 주먹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답이 나오지 않는 아이입니다. 그래도 어찌 합니까? 미우나 고우나 내 새낀(?)데, 한 번은 휘어잡아야 되겠다 싶어 밖으로 내쫓은 적이 있습니다. 고픈 배 움켜쥐며 하루는 밖에서 버티더니 둘째 날은 도저히 안 되겠던지 눈물과 코물이 범벅이 되어 무조건 잘 못했다며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평균에는 한참 떨어집니다. 아직도 매일 심리전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저는 이런 '꼴통'들을 좋아합니다. 왠지 은근히 정이 가서 그렇고, 나의 인내심을 단련시키고 키워주는 '성소막이'들이라는 생각 때문에도 그렇습니다. '꼴통'들은 운동선수들이 다리에 차고 뛰는 모래주머니 같은 아이들입니다. 모래주머니가 종아리에 알통이 배기게 하듯 우리의 인내심에 알통이 배기게 하는 인물들이 바로 요놈들이기 때문입니다.


'꼴통'들의 심리는 알고 보면 아주 간단한 방정식입니다.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의 삐뚤어진 표현방식(방정식)입니다. 하지만 삐뚤어진 표현방식(방정식)을 바로 잡는 데는(푸는 데는) 몇 년에서 몇 십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기다림인 것 같습니다. 사랑은 인내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끝까지 우리를 기다려 주듯이 우리도 끝까지 우리의 '꼴통'들을 기다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꼴통의 주어는 '너'도 될 수 있지만 '나'도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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