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이 좋다.
사람을 기다리다 보면
설레는 마음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만나기로 한 사람이 오지 않으면
여러 가지 까닭이 있겠지 생각한다.
내가 사람들에게
마음 놓고 베풀 수 있는 것은
사람을 기다려 주는 일
내가 사람들에게
마음 놓고 베풀 수 있는 것은
다음에 또 기다려 주는 일
나는 사람을 만나는 일보다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이 좋다.
- 기다리는 시간 / 서정홍
이 시를 읽으면서 내가 부끄러워졌다. 나는 기다리기를 잘 못한다. 며칠 전이었다. 후배 Y와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 시간보다 20분이나 늦게 왔다. 나는 불 같이 화를 내었다. 나는 시간 약속 못 지키는 사람을 제일 싫어한다고, 도대체 벌써 몇 번째야, 후배는 미안하다는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아내에게 주로 화를 낼 때도 날 기다리게 만들 때다. 그러나 화를 내고 나서는 금방 후회를 한다. 조금만 참을 걸, 왜 그렇게 옹졸한 속을 드러냈는지 늘 자책을 한다. 다음에는 좀 더 참아야지, 라고 하지만 마음 그릇이 그것밖에 안 되는지 늘 그 모양이다.
이오덕 선생님은 시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1)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2)기쁘게 해준다, 3)새로운 세계를 열어 보여 준다, 4)자유롭게 살아가는 마음을 갖게 해준다, 5)희망을 준다, 등으로 설명했는데, 이번 시처럼 날 부끄럽게 하기도 한다. 시인처럼, 무슨 까닭이 있겠지, 하며 느긋하게 사람을 기다려주는 마음이 무척 아름답다. 나는 왜 저 마음의 백분의 일이나마 닮을 수 없을까? 시에서 말하는 기다림은 꼭 약속시간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은 비록 내 마음에 안 들지라도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마음이 필요할 것 같다. 그 사람은 자식일 수도 있고, 제자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다. 그렇게 훗날을 기대하면서 설렐 수 있다면 얼마나 큰 사람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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