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붉고 푸른 못 / 유용주

샌. 2010. 8. 7. 15:09

나무는

땅에 박힌 가장 튼튼한 못,

스스로 뿌리내려

죽을 때까지 떠나지 않는다

만신창이의 흙은

안으로 부드럽게 상처를 다스린다

 

별은

하늘에 박힌 가장 아름다운 못,

뿌리도 없는 것이

몇 억 광년 동안 빛의 눈물을 뿌려댄다

빛의 가장 예민한 힘으로 하느님은

끊임없이 지구를 돌린다

 

나는

그대에게 박힌 가장 위험스러운 못,

튼튼하게 뿌리내리지도

아름답게 반짝이지도 못해

붉고 푸르게 녹슬어 있다

 

소독할 생각도

파상풍 예방접종도 받지 않은 그대의,

붉고 푸른 못

 

- 붉고 푸른 못 / 유용주

 

유용주 시인은 처음에 산문으로 알게 되었다. 어느 잡지의 최근호에서 시인의 감칠 맛 나는 글을 다시 만났다. 이건 유 시인의 글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시인의 산문은 개성이 있다.소녀적 감성이 들어 있는 글에는 삶에 대한 통찰이 번뜩이기 때문에 결코 가벼이 읽을 수가 없다. 그것은 시인 자신이 삶의 밑바닥 현장에서 온 몸으로 깨달은 경험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시인의 시 한 편을 찾아 읽는다. 나무를 땅에 박힌 못, 별을 하늘에 박힌 못으로 비유한 것은 새롭고 신선하다. 나무나 별을 못으로 비유한 것은 처음 본다. 그리고 나 또한 그대에게 박힌 못이며, 그대 또한 나에게 박힌 못이다.이런 표현은 시인이 목수이기 때문에 더욱 실감나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나무나 별과 달리 인간은 가장 위험스러운 못이 될 수 있다. 그대에게 다가간 가장 아름다운 못이 되길 기대하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혹여나 가장 가까운 당신에게, 파상풍 예방주사도 받지 않은 그대에게, 치명적 독이 되어 고통을 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