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기차표 운동화 / 안현미

샌. 2023. 10. 2. 11:49

원주시민회관서 은행원에게

시집가던 날 언니는

스무 해 정성스레 가꾸던 뒤란 꽃밭의

다알리아처럼 눈이 부시게 고왔지요

 

서울로 돈 벌러 간 엄마 대신

초등학교 입학식 날 함께 갔던 언니는

시민회관 창틀에 매달려 눈물을 떨구던 내게

가을 운동회 날 꼭 오마고 약속했지만

단풍이 흐드러지고 청군 백군 깃발 날려도

끝내, 다녀가지 못하고

인편에 보내준 기차표 운동화만

먼지를 뒤집어쓴 채 토닥토닥

집으로 돌아온 가을 운동회날

 

언니 따라 시집가버린

뒤란 꽃밭엔

금방 울음을 토할 것 같은

고추들만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지요

 

- 기차표 운동화 / 안현미

 

 

조용히 추석이 지나갔다. 추석 귀성을 안 하게 된 지도 네 해째가 되었다. 가벼워지긴 했지만 뭔가 허전하다. 그 빈 구석을 중국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안게임 경기를 보며 채웠다.

 

이 시가 추석을 맞는 내 쓸쓸한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문득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운동화보다는 고무신이 더 기억하는 걸 보니 당시의 일상화는 고무신이었다. 왕자표, 말표 같은 상표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냇가에서 물놀이를 할 때 고무신만큼 편한 게 없다. 그냥 물속에 신고 들어가고, 밖에 나와서도 훌훌 털기만 하면 되었다. 고무신을 접어 자동차 놀이를 하기도 했다. 잡은 물고기는 고무신에 물을 담아 넣어두기도 했다. 운동화는 소풍을 가거나 운동회를 할 때 같이 특별한 행사날에 신었을 것이다. 고무신이 찢어지면 실로 꿰매었고, 서로의 고무신을 구별하기 위해 기호로 표시를 해 두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고무신과 작별을 하게 되었고,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가죽으로 된 단화를 처음으로 사게 되었다. 하지만 딱딱한 게 너무 불편해서 자주 신지는 못했다. 한참을 지나 50대가 되어 밤골 생활을 할 때 고무신이 얼마나 편리한 지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도 고무신만큼 편한 신발이 없다고 생각한다. 마음 같아서는 외출할 때 고무신을 신고 다니고 싶지만 옷과의 조화가 문제여서 망설이고 있다.  

 

시인은 기차표 운동화를 소환하면서 시집간 언니와 그리운 옛 시절을 추억한다. 가을이 풍요의 계절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 배경에는 쓸쓸함과 그리움이 깔려 있다. 60대가 넘었다면 누구라도 그러하지 않겠는가. 추석에는 자식과 손주들이 찾아왔다가 하룻밤을 자고 갔다. 고향에 계신 노모에게는 며칠 뒤에 찾아뵐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