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안 되고
사랑의 고백 더욱 안 된다면서
긴 세월 살고 나서
사랑 된다 사랑의 고백 무한정 된다는
이즈음에 이르렀다
사막의 밤의 행군처럼
길게 줄지어 걸어가는 사람들
그 이슬 같은 희망이
내 가슴 에이는구나
사랑 된다
많이 사랑하고 자주 고백하는 일
된다 다 된다
- 사랑, 된다 / 김남조
사랑과 믿음을 노래한 김남조 시인이 지난 10일에 세상을 뜨셨다. 향년 96세였다. 가톨릭 신자였던 시인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시를 쓰셨고, 3년 전에는 <사람아, 사람아>라는 시집을 내기도 했다. 올봄에는 시화전까지 열 정도로 연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활동을 했는데 돌연 부음이 들려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시인은 종교적 경건함을 바탕으로 인간과 신을 향한 사랑을 찬미한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인의 삶도 그러했다. 6.25전쟁을 거치며 아버지와 형제를 모두 잃고 어머니와 살았는데, 10대에 폐결핵에 걸리며 가톨릭 신앙에 눈을 떴다. 노년에는 심장이 좋지 않아 오랫동안 치료를 받았다. "노년의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숨 쉬는 일이 위대하고 가슴 벅차다"라고 시인은 말했다.
시인의 다른 사랑 시를 하나 찾아 읊어본다.
아니라 하는가
사랑이란 말, 비련이란 말에조차
황홀히 전율 이는
순열한 감수성이
이 시대엔 어림없다 하는가
벌겋게 살결 다친
상처 무릅쓰고
가슴 한복판을 달리게 하는
절대의 사랑 하나
오히려 덧없다 이르는가
아니야 아닐 것이야
천부의 사람 마음
그 더욱 사람 사랑
새벽 숲의 청아한 그 정기를
누구라 막을 것인가
사랑하리, 사랑하라
그대의 순정과
그대 사랑하는 이의 순정으로
그 더욱 사랑하고, 사랑하라
- 사랑하리, 사랑하라 / 김남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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