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탄로가 / 신계영

샌. 2023. 11. 22. 10:42

아이 적 늙은이 보고 백발을 비웃더니

그동안에 아이들이 나 웃을 줄 어이 알리

아이야 웃지 마라 나도 웃던 아이로다

 

사람이 늙은 후에 거울이 원수로다

마음이 젊었더니 옛 얼굴만 여겼더니

센 머리 씽건 양자 보니 다 죽어만 하아랴

 

늙고 병이 드니 백발을 어이 하리

소년 행락이 어제론 듯 하다마는

어디가 이 얼굴 가지고 옛 내로다 하리오

 

- 탄로가(嘆老歌) / 신계영

 

 

조선 중기의 문인이었던 신계영(辛啓榮, 1577~1669) 선생이 쓴 늙음을 한탄하는 노래다. 자신의 소년 시절과 비교하며 세월의 무상을 절감하는 노인의 심경을 진솔하게 고백한다. 선생은 92세까지 살았으니 당시로서는 굉장히 장수한 셈이다. 노년의 아픔과 쓸쓸함을 몸소 체험한 바가 컸을 것이다.

 

나도 이제 선생의 마음에 공감하는 나이가 되었다. 손주가 찾아와 "할아버지"라고 부르면, 아이 적에 할아버지 뒤를 따르던 내 모습이 선뜻 스친다. 가슴으로 스산한 바람이 훑고 지나간다. "아이야 웃지 마라 나도 웃던 아이로다"라는 선생의 속마음이 절절이 다가오는 것이다.

 

우리는 늙음이나 죽음을 애써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솔직히 드러내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한 자기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듯이 생각하고 행동한다. 늙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면서 죽음이 나와 관계가 없는 것처럼 태연하다. 마음만은 젊다는 말이 좋은 뜻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이런 직설적인 탄로가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다. 현실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늙음을 부정하고 싶으니까 피부 주름을 없애는 시술을 받고, 회춘에 관심을 가진다. 나에게 탄로가는 늙음에 대한 탄식이 아니라 생에 대한 긍정의 노래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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