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참 재미있게 읽었다. 책을 읽는 동안은 한여름 더위도 잊었다. 빌 브라이슨,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여행 작가라는 칭송이 결코 빈말이 아니다. <나를 부르는 숲>은 친구와 함께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종주한 이야기를 쓴 산행기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내용이라 무거워질 수도 있는데 가볍고도 유머러스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글 쓰는 솜씨가 정말 발군이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우리나라 백두대간 길과 비슷하지만 스케일은 엄청 크다. 조지아 주에서 메인 주까지 14개 주를 관통하는데 길이가 무려 3360 km다. 이 산길을 쉼 없이 걸어 대개 6개월 정도에 주파한다. 40대의 저자는 전 구간을 종주하지는 못했지만 산길에서 만난 흥미로운 사람들과 자연의 모습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엄청난 모험에 대한 얘기이지만 함께 일희일비하다 보면 자연과 인간에 대한 소중한 교훈을 얻게 된다.
책에는 걷지 않는 현대인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미국인들의 하루 평균 보행거리는 500 m도 채 안 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저자가 알고 있는 한 여인은 400 m 떨어진 체육관에서 러닝머신을 타기 위해 차를 타고 간다. 그러면서 주차할 공간이 없다고 열을 낸다. 차라리 체육관까지 걸어가서 러닝머신을 5분 정도 덜 타는 게 어떠냐고 물어보았더니 그녀의 대답은 이랬다는 것이다. “러닝머신에는 내게 맞는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이죠. 그건 내 거리와 속도를 기록하고, 나는 난이도에 따라 그걸 조절할 수 있어요.”
기계 위에서 걷기 위해 차를 타고 찾아간다는 것은 현대문명 속 인간의 아이러니다. 산행 길에서 만난 한 남자는 온갖 전자 장비를 가지고 수십 가지 항목을 측정하면서 나타난 수치로 걸을지 말지를 판단한다. 인간은 이제 부지불식간에 기계와 정보에 의존하며 살아간다. 날씨도 이제는 일기 예보의 수치로 경험한다. 자연과 직접 접촉하고 피부로 느끼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글을 읽다 보면 우리가 무엇을 잃고 있고, 회복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강간이다.’ 산림청이 국립공원 안에서 민간 기업들이 벌목하는 것을 허용하고 과학적 조림을 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저자가 쓴 표현이다. 저자가 볼 때 그것은 자연 경관에 대한 야만적 모욕일 뿐 아니라 산사태를 불러일으키는 생태적 파괴 행위였다. 만약 저자가 우리의 4대강 사업을 알고 있다면 과연 뭐라고 말할까. 강을 파헤치고 강물을 막으면서 강 살리기로 변명하는 짓은 도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숲으로 들고 싶은 충동에 내내 가슴이 뛰었다. 히말라야에 대한 열정이 다시 되살아났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길을 걷느냐가 아니라 길을 걷는다는 사실과 길 위에서 무엇을 느끼느냐는 점이 아닐까. 산길에서 숲이 부르는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다면 에베레스트에 선들 아무 소용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집 가까이의 작은 산길도 히말라야나 애팔래치아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가. 이것이 체력이 떨어져 멀리 나가지 못하는 나의 변명 아닌 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