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

샌. 2010. 7. 26. 13:44

조영남 씨를 가까이서 본 건 수 년 전 어느 종교 강연회장에서였다. 강연이 끝난 뒤 강사가 청중석에 있던 조영남 씨를 소개하며 소감 한 마디를 부탁했다. 그때 조영남 씨는 자신의 개신교 경력을 간단히 말한 뒤 개신교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피력했다. 당시 강연 주제도 그와 비슷한 것이었다. 그리고 조영남 씨가 자신은 기독교를 이미 졸업했다는 요지의 발언은 지금도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다. 그 말이 당시에는 상당히 건방지게 들렸지만 지금은 자유주의자로서의 조영남답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조영남 씨가 시인 이상의 시 해설서를 냈다. 제목이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이다. 아마 한자를 병기해야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상(李箱)은 이상(異常) 이상(以上)이었다. 조영남 씨는 책머리에서 왜 생뚱맞게 이상에 관한 책을 내는 이상한 일을 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대학교에 다닐 때부터 이상에 열광하게 되었다고 한다. 서로 텔레파시가 통하는 무엇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죽기 전에 이상에 관한 책은 꼭 쓴다고 다짐하며 살았는데 마침 2010년이 이상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여서 책을 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책에는 86편의 이상 시가 소개되어 있는데 각 편마다 조영남 씨 개인의 감상평이 실려 있다. 정말 이상을 사랑하지 않고는 쓰지 못할 내용들이다. 이상의 시는 워낙 난해해서 읽는 관점에 따라 독해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무슨 소린지 감을 잡기도 어렵다. 조영남 씨는 어쩌면 이상 시를 이해하는 최고의 적임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두 사람은 분명 서로 통하는 공통의 유전인자가 있는 것 같다. 이상의 시는 논리가 아니라 직감으로 느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영남 씨 덕분에 이상의 시를 모두 읽어보았다는 것에 감사한다. 그동안은 고등학교 때 국어 교과서에 나온 골목의 아해들이 나오는 ‘오감도’가 유일하게 아는 이상 시였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어렵다는 이상 시를 재미있게 읽었다는 점이다. 많은 해설서들이 이상 시보다 더 어렵게 해설함으로써 독자를 질리게 만드는데 조영남 씨는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이 책 한 권으로 조영남 씨에 대한 이미지도 많이 변하게 되었다.


당연히 조영남 씨는 이상을 세계 최고의 시인이라고 칭송한다. 그리고 이상을 가장 완벽한 아나키스트였다고 평가한다. 그는 자질구레한 역사나 허접스러운 인습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사람이었다. 이상은 다른 시인들처럼 자연이나 풍경이나 사소한 감정, 혹은 삶 따위에 경탄하거나 호들갑 떨지도 않았고, 물밀듯이 밀어닥치는 삶의 역경에 징징대지도 않았다. 보들레르처럼 악에 받쳐 분노를 터뜨리지도, 랭보처럼 한 발 물러서지도 않았다. 오히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정면대결을 했다는 것이 조영남 씨의 평가다.


한 시인을 평생에 걸쳐 사랑하면서 그의 시 해설서를 펴내게 된 조영남 씨는 무척 행복할 것 같다. 내가 그만큼 사랑하는 대상은 무엇인가? 죽기 전에 꼭 한 권의 책으로 남기고 싶은 것이 있는가? 나는 조영남 씨가 이왕이면 이상의 평전까지 써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내면과 감응하고 공진하는 것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특히 이상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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