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명리학

샌. 2010. 9. 3. 14:26

퇴직 후에 기회가 된다면 명리학(命理學) 공부를 해보고 싶다. 역술(易術)에 대해서는 미신이라고 이때껏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사주팔자라고 하면 콧방귀부터 뀌었다. 그런 생각이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젠 호기심이 조금씩 생긴다. 그리고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보이는 세계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고 이해 불가능한 세계에 대한 존중감도 생긴다. 우리 선조들의 사유 세계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비과학적이라고 내칠 것은 아닌가 싶다.


어렸을 때 설날이 되면 어른들은 <토정비결>을 사와서 한 해의 운세를 보았다. 나는 안방에서 어머니를 비롯한 여자들의 운세를 읽어주었던 기억이 난다. 월별로 사언절구로 된 한자가 적혀 있고 우리말 풀이가 달려 있었다. 은유적인 표현들이 재미있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때 방안의 풍경은 웃음소리 가득한 잔칫집과 같았다. <토정비결>에는 대부분 긍정적인 말들이 많았다. 서민들의 고단한 삶에서 비결이 주는 희망의 메시지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민중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명리학의 세계를 알아보고 싶다. 명리학은 성리학에 비하면 푸대접을 받으면서 비주류의 학문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나는 개인의 운명이라든가 길흉화복이라는 측면보다는 선인들이 인간과 우주를 어떻게 보았는지에 관심이 크다. 그래서 명리학을 철학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싶다. 난해하다는 두암(斗庵) 한동석(韓東錫)의 <우주변화의 원리>라는 책도 언젠가는 이해하게 될 날을 희망한다. 또한 명리학 공부를 마음 수양의 방편으로 삼고 싶다.


<사주명리학 이야기>(조용헌, 생각의 나무)를 읽었다. 이 책은 역술 대가들의 일화로 되어 있다. 얼마까지 믿어야할지 모르지만 신기한 사례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재미는 있지만 명리학에 대한 지식을 얻는 데는 미흡하다. 앞으로 명리학 기초 서적들을 찾아 읽어볼 예정이다. 그러면 과연 공부해 볼 만 한지, 또는 할 수 있을지 짐작이 될 것이다. 나는 물리학을 전공했으니 명리학과 잘 접목이 된다면 아주 재미있을 것 같다. 이 공부가 워낙 어렵다고 하니 도전해 볼 의욕이 더 생긴다.


책 끝에는 명리학을 공부하는 비결이 이렇게 나온다. 결론은 그냥 무식하게 하라는 거다.


‘사실 무식한 방법이 정공법이다. 무조건 외우는 방법이 막고 품는 방법이다. 변화구나 체인지 업 말고 무조건 강속구를 던지는 수밖에 없다. 꿈에서도 경전을 외울 정도면 도통한다고 한다. 불가나 도가나 유가의 공부방법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온 말이 ‘사지사지 귀신통지(思之思之 鬼神通之)’라는 말이다. ‘밤낮으로 생각하여 게을리 하지 않으면 활연(豁然)하게 깨닫는 바가 있다’는 뜻이다. 선가(禪家)에서 말하는 몽중일여(夢中一如: 꿈에서도 낮에 생각한 마음과 같음)가 바로 이 경지이다. 조선후기의 유가의 도인이었던 이서구(李書九)가 <서경> 서문을 9천 번 읽어서 이름을 ‘서구(書九)’라고 지었다는 말이 전해져오고, 황진이 묘를 지나면서 ‘잔 잡아 권할 사람 없으니 이를 슬퍼하노라’고 절창을 읊었던 임백호(林白湖)가 속리산 정상의 암자에서 중용을 5천 번 읽고 나서 한 경지 보았다는 이야기는 모두 같은 맥락에 속한다. 결론적으로 한동석이 보여주었던 파워의 진원지는 <황제내경> 1만독이었음을 알 수 있다. ‘노느니 염불한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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