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농부시인의 행복론

샌. 2010. 10. 5. 10:46

"아들아, 간디학교 졸업하면 대학 가지 말고 아버지랑 농사지으며 살면 좋겠구나."

"아버지, 걱정 마세요. 사람이 제 먹을 곡식을 제 손으로 짓는 일말고 할 게 뭐가 있겠어요. 친구들과 농부가 되자고 약속했어요. 젊었을 때 배우고 싶은 거 배우고 나서 말이에요. 그러니 학교 졸업하고 당장 농부가 되지 않더라도 느긋하게 기다려 주세요. 아셨죠?"

"여태껏 배웠으면 됐지, 무어 그리 배울 게 많나. 어쨌든 농부가 된다니 기다려야지. 그런데 농부가 된다는 말은 믿어도 되는 거지?"

"아 참, 아버지는 아들 말을 못 믿으면 누구 말을 믿으세요?"

"그렇지, 아들 말을 믿어야지. 믿고말고."

<농부시인의 행복론>에 나오는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내용이다. 말이 아니라 삶으로 자신의 신념을 보여주는 사람은 무섭다. 보통의 먹물들은 말과 생각만 요란하다. 다들 농촌을 걱정하지만 자식에게 농부되기를 권할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있을까. 그것도 돈을 벌려는 기업농이 아니라 가난한 소농이다. 서정홍 시인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삶으로 실천하는 분이다.

시인은 2005년도에 합천의 황매산 아래에 있는 산골마을로 내려가서 농부가 되었다. 불편하고 가난한 삶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그러면서 도시에서 느끼지 못했던 사람 사는 기쁨을 얘기한다. 시인은 전에는 도시에서 노동자로 살았고 노동자시인이었다. 시인은 농부의 마음을 강조한다. 농심은 욕심이 없는 소박한 마음이다. 농부의 마음만이 병든 지구를 살릴 수 있다. 시인은 많은 사람들이 농촌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한다. 소농 중심의 유기농업만이 위기의 문명에 대한 대안이다. 시인은 도농생명공동체운동도 함께 하고 있다.

농촌이 살지 못하면 도시도 죽는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유기농업으로 땅도 살리면서 사람의 건강도 살려야 한다. 이런 유기농작물은 도시의 소비자와 연결되어 정당한 값을 받고 농민의 소득으로 환원되어야 한다. 그리고 도시인들도 여가 시간에 농촌을 찾아 땀을 흘리면서 흙과 가까워져야 한다.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그와 정반대다. 도시인들은 값싼 농산물만 찾고, 농민들은 생산량을 높여 수입을 올리기 위해 소비자들의 건강은 안중에도 없다. 병든 땅을 살리고 건강한 곡식을 생산할 고민은 하지 않는다. 이런 현실의 배경에는 농촌을 죽이는 국가 정책에 일차적인 원인이 있음은 물론이다.

책을 읽다보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변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탐욕을 버리고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 지혜는 우리 마음 속에 들어 있다. 돈 중심의 가치관에서 벗어난다면 자연히 농촌은 살아날 것이다. 농촌이 살아나면 도시도 건강해진다. 농부시인은 사람과 자연, 농촌과 도시, 못난 사람과 잘난 사람,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아름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농부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아는 사람 한사람 없는 작은 산골마을에 들어와서 농사지으며 스스로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남을 들여다보기 전에 나를 먼저 들여다보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입니다. 농사를 짓든, 집을 짓든, 무슨 일을 하더라도 무엇보다 나 자신을 바로 세우는 일이 먼저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 월급이란 놈을 받아먹고 살 때에는, 그놈에게 꼬리를 붙잡혀 나를 세우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밤새 나를 세워놓으면, 해가 뜨자마자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런데 남의 논밭 빌려 농사짓고 살면서부터 나를 세우는 일이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루하루 무엇을 할 것인가를 내가 스스로 생각해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월급이란 놈을 받아먹고 살 때에는 남이 시키는 대로 하루를 살았습니다. 내 몸과 마음을 월급이란 놈이 늘 감시하고 짓누르고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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