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산티아고, 거룩한 바보들의 길

샌. 2010. 11. 5. 12:53

리 호이나키(Lee Hoinacki)는 65세가 되던 1993년에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었다. 프랑스 생장피도포르에서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800 km에 이르는 길을 31일 동안 혼자 걸은 것이다. 이 길은 가톨릭의 순례길이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북부를 따라 대서양까지 이어진다. 산티아고에 성 야고보의 시신이 있다고 믿은 사람들은 서기 1000년경부터 서쪽을 향해 순례 여행을 떠났다. 특히 중세 때는 순례 행렬이 대단했다고 기록은 전한다. 호이나키는 일리치의 추천으로 생애의 느지막이 이 길에 섰다. <산티아고, 거룩한 바보들의 길>은 한 달에 걸친 그의 순례 기록이며 신앙 고백이다.


호이나키는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에서 만났던 분이다. 젊었을 때 도미니크 수도회에 입회해서 중남미 지역에서 사목활동을 하다가 사회정의의 실현을 위해 일리치와 함께 한다. 뒤에 정치학을 공부하고 교수가 되었으나 미래가 보장된 교수 자리를 스스로 사직하고 농부가 되었다. 자본주의 고속열차에서 스스로 뛰어내린 것이다. 그래야 폭력에 이바지하지 않으면서 피 묻은 돈을 만지지 않을 수 있다고 믿었다. 호이나키는 스콧 니어링과 비견되는 실천하는 지식인이다. 그의 삶과 세상을 보는 관점은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에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산티아고, 거룩한 바보들의 길>은 여느 산티아고 여행기와는 다르다. 우리나라에도 몇 년 전부터 산티아고 열풍이 불어 여러 권의 안내 책자가 나왔다. 대부분이 컬러 사진과 함께 길을 걷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500쪽이 넘는데도 흑백사진 몇 장밖에 없다. 무미건조하게 보일 수도 있다. 호이나키는 매일 묵주기도를 올리며 길을 걷는데 그 과정에서 가톨릭 신앙을 재발견한다. 이 책은 하루하루의 성찰과 느낌을 기록한 종교적 성향이 짙은 책이다. 그의 사색은 기독교와 스페인 역사에부터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 신앙의 전통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펼쳐진다. 물론 길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이나 알베르게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묘사도 흥미 있다.


호이나키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20 - 40 km를 홀로 걸었다. 폭풍우도 개의치 않았다. 일리치가 선물한 중고 신발 하나에 배낭을 메고 손수 빨래하고 식사를 준비하며 순례의 고행을 했다. 대개 새벽에 출발해서 오후 이른 시간에 알베르게에 닿는다. 그러면 젖은 신발이나 옷을 말리고 식사 준비를 한다. 음식물은 도착한 마을에서 구입한다. 어떤 날은 숲에서 길을 잃어 들판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그때마다 수백 년 앞서서 길을 걸었던 순례객들을 생각하며 그들이 함께 해 준다고 믿으면서 어려움을 이겨냈다. 호이나키는 성물 숭배 같은 신앙 행태에는 비판적이다. 콤포스텔라에 성 야고보의 시신이 있다고도 믿지 않는다. 호이나키가 말하는 신앙은 보통 신앙의 의미와는 다르다. 호이나키는 인간에 내재된 순수한 종교심,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소중하게 여긴다.


호이나키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여러 번 드러낸다. 쓰레기장에 버려진 수레에서 사라져가는 인간의 시대를 슬퍼한다. 어느 마을에서 만난 구두수선공을 통해서는 옛 장인의 숨결을 느낀다. 그러나 손노동의 회피, 도시적 편리함에 대한 중독증상, 노동절약적 기계에 대한 집착이 한 아름다운 시대의 종언을 고하고 있다. 미래는 인간이 사라진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 호이나키는 스페인 정부가 관광객을 모으기 위해서 시행하는 현대화된 프로젝트가 전통적인 순례길을 파괴하는 사실도 지적한다. 험한 길을 다니기 편하도록 탄탄대로로 만들고 가로수도 심는다. 자전거로 순례길을 달리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호이나키는 무척 못마땅하게 여긴다. 제주도 올레길도 그런 면에서 지금 논란이 되고 있다. 일부 구간에서 자연스런 흙길 대신 돌길을 만든 것이다. 호이나키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간섭은 적을수록 좋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호이나키가 불평만 하는 건 아니다. 글을 관통하는 정신은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마음이다. 책을 읽다보면 옆에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 달간 순례길을 걸으며 호이나키는 감각의 중요성을 재발견한다. 자연과 함께 부딪치고 접촉함으로써 진정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깨달을 수 있다. 흙을 직접 발로 감촉하고 공기를 마시며 걷는 동안 호이나키는 현실 속에서 발을 딛고 서지 않는 한 삶의 어떤 의미도 깨닫지 못하리라는 걸 느낀다. 도시에서 관념적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한들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신앙이나 하느님을 인식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동안 감각을 너무 소홀히 해 왔다. 특히 현대문명과 디지털 세상은 인간을 감각과 점점 멀어지게 만든다. 문명이 가지는 근원적인 문제점이 여기에 있다.


실천하는 진보적 지식인인 호이나키는 카미노를 걸으면서 옛 신앙의 회복을 꿈꾼다. 그것은 전통의 회복이기도 하다. 진리는 단순하다. 전통의 유산 속에 답이 들어있다. 호이나키는 홀로 걸으면서 수많은 신앙의 선조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가 부모님과 옛 순례자들이 물려준 살아있는 신앙의 전통을 공동체 안에 얼마나 확립하는 일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결론이 좀 의외이고 진부한 부분이 있지만 호이나키도 역시 ‘오래된 미래’에서 구원을 찾으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이 31일 동안의 고독과 침묵 속에서 들은 내면의 소리는 나 역시 카미노를 외롭고 힘들게 걸을 때에만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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