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인생의 선용

샌. 2010. 11. 30. 09:48

인생에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인간만큼 오래 살기를 원하면서도 정작 잘 살기 위해 전혀 노력하지 않는 존재도 없다.


이렇게 시작되는 러보크(J. Lubbock)의 ‘인생의 선용(善用)’은 범우사에서 나온 같은 제목을 가진 작은 문고본에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전 직장에서 선물로 받았던 것인데 서랍 속에 있던 걸 다시 꺼내 읽어 보았다. 글에는 노숙한 인생의 스승이 전하는 당부와 지혜의 말이 가득하다. 그러나 180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 탓인지 고리타분한 느낌도 있다. 서양의 공자 왈 맹자 왈, 을 듣는 기분이다. 하지만 진지하게 경청할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 인간다운 삶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내면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글에 나오는 중요 내용들을 발췌해 보았다.


- 인생에서 성공과 행복은 환경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의해 좌우된다. 타인에 의해 파멸된 사람보다 스스로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진 사람이 더 많으며, 폭풍우나 지진으로 파괴된 집이나 도시보다 사람에 의해 파괴된 집과 도시가 더 많다.


- 나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한 적은 없다. 다만 행복해질지도 모르는데 만약 행복하지 않다면 그 잘못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을 향유하지 않고 던져버린다는 점을 말했을 뿐이다.


- 인생은 장미의 화원도 아니며 그렇다고 전쟁터도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원하는 데에, 피할 수 없는 것을 후회하는 데에,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데에 일생을 허비한다.


- “만약 사람들이 육체를 단련하는 것만큼 두뇌를 단련한다면, 그리고 향락을 위해서 수고하는 것만큼 덕을 위해 수고한다면, 인생은 참으로 훌륭한 것이 될 것이다.”고 세네카는 말했다.


- 우리는 시간의 대양에서 우리 배를 조종할 수 있는가? 아니면 이미 정해진 운명을 따라 표류할 것인가? 대답은 분명하다. 사람은 사람이므로 자기 운명의 키를 쥐고 있다. 만약 그가 운명의 주인이 아니라면 그 잘못은 자신에게 있다. 인생은 선택에 따라 개선 행진으로 만들 수도 있으며 장례 행렬로 만들 수도 있다.


- 리히터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자신이 희망하는 사람이 된다. 인간의 의지력은 신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진지하게 그리고 성의를 가지고 되기를 원한다면 어떤 것이든 될 수 있다.”


- 사람이 좋은 기회를 어떻게 낭비하는가를 보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부주의하게 낭비되거나 버려지는 축복들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행복은 환경의 결과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다.


- 스튜어트의 말을 빌면, 행복의 비결은 외계의 사물을 우리에게 적응시키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오히려 우리가 외계의 사물에 적응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행복한 성격은 연간 1만 파운드의 수입을 올리는 토지보다 낫다고 데이빗 흄은 현명하게 말했다.


- 동물은 고민할 수 없지만 사람은 고민한다. 사람은 헛된 환영 속을 걸으며 헛되이 애태운다. 인생의 많은 고민들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재난으로부터 야기된다. 사람들은 의심과 공포, 걱정과 근심으로 스스로 괴로워한다. 불가사의한 현상이 우리를 온통 둘러싸고 있지만 그것 때문에 초조해해서는 안 된다.


- 릴리는 그의 소설 <유퓨이즈>에서 인생에 대한 교훈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양과 함께 자고 종달새와 함께 깨어나라. 즐거워하되 겸손하라. 침착하고 용감하되 지나치게 모험적으로 행동하지는 말라. 의복을 단정히 하라. 식사는 영양가 있는 것을 골고루 섭취하되 과식은 금물이다. 여가 시간은 건전한 오락으로 보내라. 이유 없이 남을 의심하지 말며 확실한 근거 없이 남을 믿지도 말라. 모든 사람의 의견에 경솔히 따르지 말되 자신을 과신한 나머지 자기의 의견을 고집하지 말라. 신을 섬겨라. 신을 두려워하라. 신을 사랑하라. 그러면 신은 당신이나 당신의 친구들이 원하는 것만큼 당신들을 축복할 것이다.”


- 우리가 평생을 슬픔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음지가 없다면 양지가 있을 수 없다. 장미에 가시가 있다고 불평하지 말고 오히려 가시에 꽃이 피는 것을 감사히 여기자.


- 이 세상은 거울과 같다. 당신이 미소를 지으면 거울도 미소를 짓는다. 당신이 얼굴을 찡그리면 거울도 얼굴을 찡그린다. 당신이 빨간 유리를 통해서 보면 모든 것이 빨갛게 보이며, 파란 유리를 통해서 보면 모든 것이 파랗게 보인다. 만약 당신이 연기 속을 통해서 보면 모든 것이 뿌옇고 희미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사물의 밝은 면을 보도록 노력하라. 세상의 거의 모든 사물에는 밝은 면이 있기 마련이다. 미소로, 목소리로, 그리고 단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햇빛처럼 온 방 안을 환히 비추는 사람들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 밝은 미소와 상냥한 말로 인사하라. 그리고 유쾌하게 맞아들여라. 당신과 친하고 사랑스러운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랑한다는 것은 나타내지 않으면 안 된다.


- 인생의 수많은 축복을 감사해하고 향유해야 하지만 슬픔이나 근심을 면하게 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월폴은 인생을 이렇게 묘사했다. “인생은 사색적인 사람에게는 희극이며, 감성적인 사람에게는 비극이다.” 실로 인생은 때론 비극이며, 때론 희극이다. 그러나 대체로 인생은 반드시 우리가 선택한 대로 이루어진다.


- 우리는 충동에 끌려가면서 미래의 슬픔의 대가로 현재의 순간적인 쾌락을 사고 있으며, 하찮은 이익을 위해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있다. 또 에서처럼 한 그릇의 죽을 얻기 위해 생득권을 팔아버리고 있으며, 훗날의 길고긴 회한으로 잠시 동안의 광란적 즐거움을 사고 있다. 나는 현생에 관해서만 말하고자 한다. 실제로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선해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방종보다는 극기함으로써 많은 행복을 얻을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관대하라. 그러나 자신에게는 엄격하라.


- 프랑스 보브나르그는 이렇게 말했다. “누구에게나 부(富)나 지위나 명예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선하고, 너그럽고, 현명해질 수는 있다.”


- 성(聖) 크리소스토무스는 이렇게 말했다. “현상(現狀)은 극의 공연에 불과하며 인간의 행동은 하나의 연극이다. 부, 빈곤, 통치자, 피통치자 등과 같은 것들은 하나의 극중 역할일 뿐이다. 그러나 생의 날들이 끝나게 되면 극장 문을 닫힐 것이며 가면은 벗겨질 것이다. 그때에 각각 심판을 받게 될 것이며 각각의 업적이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 사람과 그의 재산이 아닌, 그 사람과 그의 지위가 아닌, 그 사람과 그의 위엄이 아닌, 그 사람과 그의 권력이 아닌, 바로 그 사람 자체와 그의 업적에 대해 심판을 받을 것이다.” 우리 업적이 그 심판에 합격하게 되기를 희망하자. 심판은 무엇일까?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가가 문제이며, 인생에 소위 성공했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성공할 자격이 있었느냐가 문제이다.


- 사악하고 방종한 생활이 아니라 슬기롭고 덕망 있는 생활이 진정으로 행복한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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