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샌. 2010. 12. 13. 13:45

며칠 전부터 롯데마트에서 튀김닭 한 마리를 5천 원에 판매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일반 치킨집에서의 가격이 15000원이니까 무려 1/3 가격이다. 당장 동네의 영세 치킨업자들이 피해를 입었는데 이것은 기업의 윤리성을 망각한 대형 유통업자들의 횡포가 아닐 수 없다. 대기업과 영세한 자영업자는 애초에 경쟁이 되지 않는다. 헤비급과 플라이급 권투 선수의 시합은 해보나마나이다. 그러나 소비자의 권리를 내세우며 찬성하는 자유시장론자들도 있다.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소비자에게 이익이 된다면 좋다는 것이다. 실제로 광고가 나간 뒤 롯데마트 앞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한 푼이라도 싸게 파는 곳에 소비자는 몰리게 마련이다. 이기적 기업가와 이기적 소비자로 이루어진 것이 시장의 생리다.


이번 파동은 대기업의 마케팅 차원의 전략일 수도 있다. 그들이 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내내 장사를 할 수는 없다. 그러다가 반대 여론에 부딪치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릴 것이다. 이번 파동을 통해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90%를 소유한 자들이 나머지 10%를 말살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정책적 제재 외에는 없다. 또한 영세 치킨업자들이 마치 폭리를 취하는 듯한 오도된 인상을 소비자에게 준 것도 잘못되었다. 기업에게 윤리적 자율성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 모른다. 또한 윤리적 소비에 대해서도 소비자들의 성찰이 필요할 것 같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책이다. 23가지의 주제로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를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경제학 책이지만 실생활의 사례가 많아 읽기 쉽고 배우는 바도 많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이 실은 허구임을 차근차근 설명한다. 그러나 저자가 자본주의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좋은 경제 체제라고 저자는 믿고 있다. 그런 점이 좀 아쉽다. 자본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경제 체제에 대한 고민은 없다.


책에는 우리의 교육 현실을 비유하는 재미있는 예가 있다. 대학 진학률이 90%가 넘는 학력 인플레 현실을 영화관에서 화면을 더 잘 보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장면으로 설명한다. 한 사람이 서기 시작하면 그 뒷사람도 따라서 서게 되고, 그러다가 결국 모두가 서서 영화를 보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영화관에 있는 사람들은 이제 화면을 잘 볼 수도 없으면서 앉아서 보지도 못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대학을 나오는 것이 경제 성장이나 생산성을 올리는데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한다. 대학 교육의 절반 이상은 단순한 ‘분류’ 과정을 위해 낭비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책의 부제는 ‘장하준,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말하다’이다. 저자가 말하려는 것은 북유럽식의 복지가 중심이 되는 수정된 자본주의가 아닌가 싶다. 저자가 다룬 23가지 주제의 제목은 아래와 같다.


1. 자유 시장이라는 것은 없다.

2. 기업은 소유주 이익을 위해 경영되면 안 된다.

3. 잘사는 나라에서는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을 많이 받는다.

4.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

5. 최악을 예상하면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


6. 거시 경제의 안정은 세계 경제의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7. 자유 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는 거의 없다.

8. 자본에도 국적은 있다.

9. 우리는 탈산업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10.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아니다.


11. 아프리카의 저개발은 숙명이 아니다.

12. 정부도 유망주를 고를 수 있다.

13.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14. 미국 경영자들은 보수를 많이 받는다.

15.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 나라 사람들보다 기업가 정신이 더 투철하다.


16. 우리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도 될 정도로 영리하지 못하다.

17. 교육을 더 시킨다고 나라가 더 잘 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18. GM에 좋은 것이 항상 미국에도 좋은 것은 아니다.

19. 우리는 여전히 계획 경제 속에서 살고 있다.

20. 기회의 균등이 항상 공평한 것은 아니다.


21. 큰 정부는 사람들이 변화를 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22. 금융 시장은 보다 덜 효율적일 필요가 있다.

23. 좋은 경제 정책을 세우는 데 좋은 경제학자가 필요한 건 아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틀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문제점을 개선하고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의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보완하는 현실적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한계는 있다. 이 책은 자유 시장 경제가 문제가 많으며 최선의 자본주의 체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경쟁과 탐욕의 자본주의를 어떻게 개선시킬 것인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사회의 안정과 더 나은 자본주의를 위해서 다음과 같이 제언한다.


1. 자본주의를 제대로 굴러가게 하려면 규제가 필요하다.


2. 인간의 정보처리능력(합리성)엔 한계가 있다는 걸 인정하라.


3. 이기심이 인간행동의 유일한 동기는 아니며, 사회적 책임이나 공익도 중요하다.


4. 기회의 평등만이 아니라 결과의 평등도 어느 정도 보장하라.


5. 제조업은 여전히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6. 금융부문과 실물부문 간에 적절한 균형을 회복하라.


7. 더 크고 더 적극적인 정부가 필요하다.


8. 개도국들을 ‘불공평’하단 소리를 들을 정도로 우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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