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공무도하

샌. 2010. 9. 24. 13:47

간결한 문체 때문에 김훈의 글에 끌린다. 그분의 글은 짧고 건조하다. 살이 붙어있지 않은 생선 가시 같다. 감정의 낭비가 심한 글보다 이런 드라이한 글이 마음에 든다.

이런 문체는 삶의 비애를 드러내는데 알맞다. 그분은 늘 인생의 허무함과 덧없음에 대해 말한다. 일상은 비루하고 치사하다. 부조리하고 희망 없는 세계를냉혹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묘사한다. 세상의 치부는 숨을 데가 없다. <현의 노래>에서 가야의 순장 장면과 백제군의 집단 처형 장면은 나로서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비극을 그릴 때 김훈 문체의 진가가 드러난다.

이번에 <공무도하(公無渡河)>를 읽은 것은김훈 문체를 다시 만나고 싶어서였다. 소설에는 비극적 인물 군상들이 병렬로 등장한다. 개에게 물려죽은 판잣집 아이, 누이를 강간하는 아비를 죽인 청년, 크레인에 깔려죽은 여고생, 베트남에서 시집 와서 쫓겨난 여인, 백화점 화재를 진압하다 금붙이를 훔친 소방관, 바다 밑 폭탄 파편을 주워 먹고 사는 옛 노동운동가, 장기매매, 미군 폭격 훈련으로 파괴된 공동체 등 신문 기자의 눈을 빌려 현실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다.

해망(海望)이라는 바닷가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새만금방조제와 매향리,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고생 압사 사건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김훈의 다른 작품도 그렇지만 여기서도 민초들의 삶은 힘겹고 비열하다.그것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무자비하고 세상은 고해(苦海)라는 작가의 인식에 나도 동의한다. 기쁨이나 행복은 잠시 나타났다 스러지는 물방울일 뿐이다.

작가는 결코 값싼 희망이나 위로를 말하지 않는다. 잔인한 현실을 직설적으로묘사할 뿐이다. 인간성이나 세상에 대해 미화하지 않는 이런 점이 김훈 글의 매력이다.

작가는 책 끝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나와 이 세계 사이에 얽힌 모든 관계를 혐오한다. 나는 그 관계의 윤리성과 필연성을 불신한다. 나는 맑게 소외된 자리로 가서, 거기서 새로 태어나든지 망하든지 해야 한다. 시급한 당면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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