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데 ‘추노’는 예외였다. ‘추노’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지인 중 한 사람이 이 드라마를 강력 추천해서 늦어서야 보게 되었다. 마침 쿡 TV에 가입되어 있어 프로그램 다시보기 기능을 이용해서 아무 시간에나 찾아서 볼 수 있었다. 총 24편인데 지난 두 주일동안은 퇴근하면 이 드라마를 보는 게 일이었다.
추노(推奴)는 조선시대 때 도망친 노비를 수색하여 체포하는 일을 뜻하는 말이다. 시대는 병자호란이 끝나고 청에서 볼모로 잡혀 있던 소현세자가 돌아와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뒤인데, 추노꾼 대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런데 여느 사극과 달리 고단한 민초들의 삶을 중심으로 하면서 새 세상을 꿈꾸는 인간들의 희망과 좌절을 그렸다. 특히 인간 대우를 받지 못했던 노비들을 비롯한 민중들의 삶과 당시의 시대상이 잘 그려졌다는 점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또한 대길 역을 맡은 장혁의 연기가 일품이었고, 기타 조연들의 감칠맛 나는 연기도 볼 만 했다.
나는 이 드라마에서 양반과 상놈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노비들의 반란을 제일 눈여겨보았다. 그중에서도 중심인물인 업복이와 초복이는 정말 아름다운 캐릭터였다. 그들의 뜻은 결국 기존 정치세력에 이용만 당하고 실패로 끝나지만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희망은 결코 죽지 않았음을 본다. 마지막 장면에서 “저 태양이 누구 껀지 알아?”라는 말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런 점에서 대길이가 시니컬하게 자주 내뱉던 “이 지랄 같은 세상!”도 기억에 남는 말이다.그것은 양반들의 위선과 부패, 권력욕의 무대인 궁중의 술수와 암투를 고발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늘 그래 왔다. 힘 있는 소수가 다수를 착취하는 것, 지랄 같지만 그게 세상의 진짜 이치인지도 모른다.
드라마에 빠지다보니 마지막에 대길이가 죽는 장면에서는 줄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옆에 아내가 있었는데 주책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안 그런 척 감추느라 혼났다. 목숨을 걸고 찾아다녔던 언년이는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었고, 대길의 마지막을 지킨 것은 또 다른 여자 설화였다. 인생이 그렇고 시대 또한 인간들을 배반하는 것이 다반사가 아니겠는가. “울지 마라. 네가 울면 내가 진짜 죽는 것 같잖아. 이렇게 좋은 날, 노래나 불러라.”
이 드라마에는 명대사라 불릴 수 있는 말들이 많이 나왔다. 그중에서도 대길이가 태하에게 했던 말이던가, 유난히 이 대사가 가장 선명하게 기억된다.
“세상에 매여 있는 것들은 말이야, 그게 다 노비란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