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우리 의사 선생님

샌. 2010. 5. 3. 12:47


청진기로 진찰하던 때가 인간적인 의료 기술의 마지막 시대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일본 영화 '우리 의사 선생님'[Dear Doctor]은 바로 그 말을 떠올리게 했다. 일본의 오지 농촌에서 주민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으며 일하는 '이노'라는 의사가 있다. 이노는 주민들의 속사정을 헤아리며 마음이 통하는 인술을 편다. 주민들에게는 명의에 더해 신과 같은 존재다. 그러나 그는 가짜 의사다. 영화에서는 무슨 이유로 의사 노릇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보여주지 않지만 하여튼 그는 의사 자격증이 없다. 어느날 이노가 사라지면서 그의 비밀이 드러나게 된다.

 

'우리 의사 선생님'은 잔잔하면서 따스한 영화다. 사람의 병을 고치는 것은 첨단의 의료 테크닉이나 시스템이 아니라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와 믿음임을 보여준다. 이노는 의대교육을 받지 못했다. 주사 놓은 것까지 경험 많은 간호사의 코치를 받는다. 그러나 대부분이 노인들인 주민들로부터는 무한한 존경을 받는다. 이노의 진료를 통해 사람들은 위로를 받고 실제로 병도 잘 치료된다. 이런 일도 있었다. 임종한 앞둔 노인을 지켜보다가 슬픔에 겨워 이노는 죽어가는 노인을 껴안고 등을 두드리며 운다. 이때목에 걸린 음식이 튀어나오며 노인은 다시 살아난다. 주민들은 만세를 부르며 이노를 환영한다. 병은 기술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고치는 게 맞다.

 

마을 주민 중에 도리카이 부인이 있다. 딸은 도쿄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지만 고작 일 년에 한 번 정도 내려올 뿐이다. 혼자 사는 부인은 위암에 걸려 있다. 그러나 딸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말아달라고 이노에게 부탁한다. 도리카이 부인은 조용하고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하고 이노도 동의한다. 그런데 딸이 내려와서 어머니의 병을 알게 된다. 결국 이 일 때문에 이노는 갑자기 마을을 떠난다. 딸은 어머니를 도쿄의 자신의 병원으로 모시고 가 입원시킨다. 병실에 갇힌 부인은 생기를 잃어간다. 암을 받아들이고 평화롭게 지내던 시골에서의 모습과는 딴판이다. 딸은 너무 바빠서 어머니 병실을 찾아보지도 못한다.

과연 어느 것이 인간다운 품위를 지키며 사는 길인지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다. 현재 병원이나 요양원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는 수많은 노인들의 마지막 삶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단지 기계나 시스템에 의해서 연명되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도리카이 부인을 병원 종업원으로 위장한 이노가 찾아와 재회하는 것이다. 이노를 알아본 부인은 얼굴 가득 웃음꽃을 피운다. 중요한 것은 자격증이나 첨단 치료기술이 아니다. 의술이란 결국 마음의 문제이고, 사람 사이의 정과 사랑에 의한 소통이 제일 소중하다는 것을 영화는 깨우쳐준다.

 

이노를 보면서 옛날 고향 마을에서 침과 뜸으로 병을 고치던 한 분이 생각났다. 정규 교육도 못 받은 분이셨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단순히 병을 고치는 게 아니라 주민들의 상담소나 고민 해결소 역할도 했다. 옛날에는 이런 민간 의술이 성행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의학을 국가가 독점하면서 민간의 지혜들은 거의 사라졌다. 아무나 병을 고치다가는 불법 의료행위로 고발된다. 그리고 이젠 사람들도 자격증이 아니면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것도 일류 대학 졸업장이라야 더 큰 존경을 받는다. 영화에서도 마을 사람들이 이노가 가짜 의사라는 걸 안 후 돌변하는 태도가 나온다. 사람의 능력이 자격증으로만 판명되는 현실의 모순을 영화는 또한 지적하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또한 보고난 뒤에도 떠나지 않는 느낌은 '순박함'에 대한 것이었다. 사람을 살려주는 그것을 이젠 어디 가서 찾을까?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마지막에 나온 음악도 좋았다. 가사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여류 감독 니시카와 미와의 작품이다. 지난 주에 '시네코드 선재'에서 직장 동료들과 함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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