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치마가 펄럭였을 때 세상은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렇게 시작되는 김별아의 장편소설 <미실>을 읽었다. <화랑세기>에 기록되어 있다는 ‘미실(美室)’이 실존인물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소설 내용으로 보면 무척 독특했던 여성이었던 것 같다. 미실은 자신만이 가진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활용해서 임금을 비롯한 뭇 남성들을 손아귀에 쥐고 정치적 야망을 이룬 스케일이 큰 여자였다. 그녀는 총명하고 명민했으며 어떤 면에서는 교활했다. 그녀는 남자들의 심리를 기막히게 파악하고 있었다. 한번 관계를 맺으면 어느 누구도 그녀의 매력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남성들의 로망이었지만 동시에 팜므 파탈이기도 했다.
미실은 대원신통이라는 핏줄을 가진 색공지신(色供之臣)이었다. 즉, 운명적으로 왕을 색으로 섬겨야 하는 왕의 여자였다. 그녀는 열 살이 넘으면서 이미 음양의 진리와 방중술을 배워 남자와 통하는 법을 통달하게 된다. 타고난 핏줄에 재질이 겹쳐져 미실은 숱한 영웅호걸들을 미색으로 녹였고, 그녀가 색공한 왕만도 진흥, 진지, 진평 등 셋이나 되었다. 심지어는 동생을 포함한 근친 사이의 관계도 꺼리지 않았다. 지금의 가치관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당시 신라의 풍습을 우리의 고정관념으로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미실이라는 여자에 대해서보다는 신라 사회에 대한 관심이 더 컸다. 소설이 얼마나 정확히 묘사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신라가 유교적 가치관과는 거리가 먼 사회였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아직 유교적 금욕주의가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기 이전의, 가부장적인 여성 통제 시대 이전의 세상을 소설은 잘 보여주고 있다. 확실히 성(性)은 자연스러웠고 개방적이었다. 사람들은 섹스를 감추거나 부자연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받아들이기에 좀 불편하고 충격적인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그만큼 우리가 유교적 가치관에 젖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왕이 존재한 신라를 볼 때 미실 같은 여자도 충분히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신라는 모계중심사회에 가까웠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마도 작가는 미실을 통해서 여성과 모성을 기반으로 한 화합의 세상을 그리려고 했던 것 같다. 음양이 조화를 이루고 모성이 존중을 받고 발흥해야 나라가 부흥할 것이라고 신라인들은 믿었다. 그렇다면 모성의 관능은 가장 아름다운 것임에 틀림없다. 신라인들은 그런 아름다움과 인간의 본성을 찬미하고 현생의 즐거움을 누렸다. 신라는 조신시대의 완고한 일부일처제의 감옥과는 완연히 다른 가치관의 사회였다.
개인적으로 미실이라는 여인이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몸과 능력을 믿으며 당당히 살아가는 그녀의 진취적인 삶의 태도는 부러웠다.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살았으면서 책임을 져야 할 때는 모든 것을 버리고 과감히 물러날 줄도 안 자유인이었다. 그녀는 어느 남자든 어떤 지위든 개인적인 집착이 없었다. 그저 본성에 따라 몸과 마음이 흐르는대로 자유롭게 살았다. 그러나 가장 미실다운 특징은 역시 성애(性愛)였다. 그녀는 성과 사랑을 통해서 종교적 견성(見性)에까지 이르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