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하악하악

샌. 2010. 3. 26. 11:20

‘하악하악’? 거친 숨소리를 뜻하는 인터넷 용어라는데 이외수 님이 책 제목으로 삼았다. 세상살이가 그만큼 힘겹다는 뜻일까,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숨 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을 가리키는 말로 어쩐지 어울려 보인다. 여백이 많은 책에는 작가의 단상들이 짧은 문장으로 적혀 있다. 괴짜 작가답게 솔직하면서도 유쾌하고 의미심장한데 인생의 경구로 삼아야 할 내용도 많다.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몇 개의 글을 골라 보았다.


- 세상을 살다 보면 이따금 견해와 주장이 자신과 다른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고 ‘틀린 사람’으로 단정해 버리는 정신적 미숙아들이 있다. 그들은 대개 자신이 ‘틀린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 자기는 언제나 ‘옳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한다. 성공할 가능성이 지극히 희박한 사람이다.


- 아무리 명포수라도 총 끝에 앉아 있는 새를 명중시킬 재주는 없다.


-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면서 진실을 못 보는 것은 죄가 아니다. 진실을 보고도 개인적 이득에 눈이 멀어서 그것을 외면하거나 덮어버리는 것이 죄일 뿐이다.


- 마음이 좁쌀만 한 인간이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크기도 좁쌀만 하고 마음이 태산만 한 인간이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크기도 태산만 하다.


- 척박한 땅에 나무를 많이 심은 사람일수록 나무그늘 아래서 쉴 틈이 없다. 정작 나무그늘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들은 그가 뙤약볕 아래서 열심히 나무를 심을 때 쓸모없는 짓을 한다고 그를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이다.


- 그대 신분이 낮음을 한탄치 말라. 이 세상 모든 실개천들이 끊임없이 낮은 곳으로 흐르지 않았다면 어찌 저토록 넓고 깊은 바다가 되어 만 생명을 품안에 거둘 수가 있으랴.


- 날파리 한 마리가 하악하악,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하악하악, 자기가 호랑이를 때려잡았다고 하악하악, 큰 소리를 치지만 하악하악, 정작 호랑이는 이 세상에 날파리라는 생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살아간다.


- 양의 탈을 쓴 늑대가 더 나쁜 놈일까요, 늑대의 탈을 쓴 양이 더 나쁜 놈일까요.


- 세 살짜리 꼬마가 낭랑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하야버지는 커서 뭐가 될 꼬예요. 대답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 배가 지나가면 물결이 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더러는 물결에 취해서 배가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르는 사공이 있다.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으면 도대체 무엇으로 깨달음을 얻겠는가.


- 때로는 어떤 사람의 성공이 많은 사람들에게 불행을 안겨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진정한 성공이 아닙니다.


-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음식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음식이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인간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인간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부패된 상태를 썩었다고 말하고 발효된 상태를 익었다고 말한다. 신중하라. 그대를 썩게 만드는 일도 그대의 선택에 달려 있고 그대를 익게 만드는 일도 그대의 선택에 달려 있다.


- 자기가 마음대로 돈을 그려서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그대가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은?


- 왜 사람들은 행복을 잡기 위해서라고 말하면서 한사코 행복의 반대편으로만 손을 내미는 것일까요.


- 이외수가 어떤 도인에게 물었다.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 수 있습니까. 그 도인이 대답했다. 하늘을 나는 일은 나비나 새들한테 맡겨두시게.


- 나무들 앙상한 가지를 엮어 해맑은 하늘에 그물을 쳐놓았네요. 무엇이 걸릴까요.


- 부부싸움을 하다가 아참, 울 마누라가 여자였지, 라는 사실을 자각하면 즉시 전의를 상실하게 된다.


- 마음에 들지 않는 인간을 만나면 그래, 산에는 소나무만 살지는 않으니까, 라고 생각하면서 위안을 삼는다.


- 많이 아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많이 느끼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라. 많이 느끼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많이 깨닫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라.


- 이쑤시개가 야구방망이를 보고 말했다. 그 몰골로 누구의 이빨을 쑤시겠니, 쓸모없는 놈.


- 때로 인간은 완장을 차면 눈이 멀기도 한다. 특히 정치가들 중에는 뒷걸음질을 반복하면서 자신이 진보하고 있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무서븐 신념의 압박, 캐안습이다.


- 살다 보면 청룡언월도로 몽당연필을 깎는 사람들도 만나게 된다.


- 호박꽃도 꽃이냐 - 인간. 당신은 이런 꽃이라도 한번 피워본 적이 있으슈 - 호박.


- 하필이면 비 오는 날 태어난 하루살이이게, 굳이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려는 넘들이 있다. 이럴 때는 지식이 곧 죄악이 될 수도 있다.


- 세상이 변하기를 소망하지 말고 그대 자신이 변하기를 소망하라. 세상에게 바라는 것이 많은 사람에게는, 불만과 실패라는 이름의 불청객이 찾아와서 포기를 종용하고,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많은 사람에게는, 성공과 희망이라는 이름의 초청객이 찾아와서 도전을 장려한다. 그대 인생의 주인은 세상이 아니라 그대 자신이다.


- 하루 일곱 갑 피우던 담배, 어제는 두 갑으로 줄였다. 이만하면 괜찮은 의지력이라고 자뻑하고 있다. 이제 야동만 줄이면 된다. 하악하악.


- 기상청 예보가 자주 틀리는 건 직원들 건강상태가 매우 양호하다는 증거다. 직원들 중에 신경통 환자가 한 명만 있어도 그 정도로 헛다리를 짚지는 않을 텐데.


- 인간은 ‘알았다’에 의해서 어리석어지고 ‘느꼈다’에 의해서 성숙해지며 ‘깨우쳤다’에 의해서 자비로워진다. 그런데도 제도적 교육은 후덜덜, 죽어라 하고 ‘알았다’를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한다. 즐!


- 아, 생명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하악하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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