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예수전

샌. 2010. 2. 4. 09:08

작년에 샀던 김규항의 <예수전>을 다시 읽었다. 보통 두 번째 읽게 되면 긴장감이 떨어지게 마련인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새로운 관점에 대한 긴장과 새로운 이해에 대한 설렘이 여전했다. 저자는 신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교회에 나가는 기독교 신자도 아니지만 ‘마르코복음’에 대한 강독 형식의 해설서를 썼다. 그러나 책을 읽어보면 성서에 대한 내공이 만만찮음을 알 수 있다. 작년에 이 책을 읽고 맨 처음 든 생각은 나도 언젠가는 이런 신앙 고백서를 쓰고 싶다는 것이었다. 좀더 건방지게 말하면 내가 쓰고 싶었던 것을 이분이 먼저 써버렸다는 박탈감 같은 것도 있었다. 전부터 마르코복음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견해를 쓰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꿈은 아직도 유효하다. 아마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이 <예수전>이 모델이 될 것이다.


<예수전>은 예수를 보는 시야를 확장시켜준다. 전통 교리의 좁은 틀 안에서 보는 예수가 아니라 예수가 살던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의 역사적 정치적 환경 속에서 예수를 보려고 한다. 그러므로 제도적 종교로 덧칠된 예수가 아닌 살아있는 생생한 예수를 만날 수 있다. 물론 저자의 관점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들 신앙의 폭과 깊이를 확장시켜주는 것은 사실이다. 내용에 대한 비판과 논쟁을 통하여 더 정확한 예수와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저자는 예수의 말씀과 자본주의는 서로 공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자본주의에 적응하고 자본주의를 지지하면서 예수의 이웃 사랑을 실천한다고 말하는 건 모순이라는 것이다. 예수의 이웃 사랑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극복되어져야 할 체제다. 이것은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예수님 말씀처럼 충격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성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우리의 위선과 이중성을 고발한다. 즉, 자본주의의 비인간성을 지적하고 반대하는 척 하면서 자본주의에 기대어 안온하게 즐기는 지식인들이 바로 예수가 위선자들이라고 비난한 바리사이들과 같다는 것이다. 그들은 시민운동을 하고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하면서 존경을 받지만 실제는 세상의 근본적인 변화를 막고 있다. 뜨끔한 질책이 아닐 수 없다.


저자에게 ‘믿음’이란, 하느님 나라, 즉 근본적으로 새로운 세상이 가능하다는 꿈이다. 믿으면 세상적인 축복을 많이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잘못하면 신앙을 돈이나 명예, 권력 같은 세속적인 욕망을 채우는 일과 연결시키기 쉽다. 또는 그 욕망이 내세에까지 뻗어나간다. 그러나 예수는 부자 청년의 예에서 보듯 남보다 많이 갖는 게 축복이 아니라 내 것을 없애서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게 축복이라고 말한다. 아마 지금의 많은 신자들에게 이 말씀의 실천은 재앙과 같을 것이다. 믿음이란 바로 그런 세상이 가능함을 확신하고, 새 세상을 여는 하느님의 사업에 내가 적극 동참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의 정체성 중 하나는 예수가 지배체제에 의하여 사형 당했다는 사실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여기서 지배체제는 당시 세계를 제패하고 있던 로마뿐만 아니라 사회, 종교적 기득권층이 모두 포함된다. 예수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듯 예수가 왜 사형 당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리고 세상의 한쪽에서 가난하고 억압 받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예수를 좇는 사람은 예수처럼 지배체제와 불화할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으면서, 아무런 오해나 곤경에 처하지도 않고, 칭찬과 존경을 받으면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가소로운 일이다.


그렇다고 예수가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고통과 헌신만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는 삶을 즐기고 행복하라고 말한다. 그분은 억눌리며 죄의식에 시달리는 하층민들을 찾아다니며 하느님의 위로와 사랑을 전했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과 웃음을 되찾아 준 것이다. 예수는 그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렸고 술꾼에 먹보라고도 불렸다. 예수는 ‘새 나라’를 만드는 일이야말로 참 행복을 찾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가올 새 나라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이미 하느님의 나라에 동참한 것이다.


이 책은 신앙에 대해서 많이 숙고하게 만든다. 저자는 우리들에게 마땅히 고민해야 할 과제를 던져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아마 역사상 예수만큼 오해를 받고 있는 인물도 없을 것이다. 예수가 깨뜨리려고 한 것을 반대로 더 지키려고 하면서 예수를 잘 믿는다고 착각한다. 반예수적인 것이 가장 예수적으로 보이는 세상이 되었다. 어제는 새로 나온 신간인 <예수평전>이 도착했다. 히브리 고어를 전공하신 분이 옛 문헌들의 고증을 통해 예수의 생애를 재구성한 책이다. 학문적 바탕이 탄탄하여 배울 바가 상당히 많을 것 같다. 예수에 관한 다양한 견해의 책들을 만날 수 있어 행복한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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