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더 로드

샌. 2010. 1. 23. 08:13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볼 때는 늘 조마조마하다.소설에서의 감동이 영화에서는 반감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까이는'눈 먼 자들의 도시'가 그랬다.이태 전에 소설로 '더 로드'를읽었었는데 그때 영화로 만든다는 얘기가 있어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기다리던 영화가 드디어 올초에 개봉되었다.

 

걱정했던 것보다 영화는 그런대로 잘 만들어졌다. 우려했던 헐리우드식의 가족 감상주의도 강도가 덜했다. 나는 세상이나 인류의 종말에 대한 관심이 크다. 문명의 파멸은 어떤 식으로 찾아올 것인지, 그리고 파멸 뒤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호기심이 많은 편이다. 이 영화 '더 로드'[The Road]에서는 지구 파멸의 과정은 나오지 않는다. 전지구적인 자연의 재앙 탓이라는 것만 암시적으로 주어질 뿐이다. 아마 소행성의 충돌이든가 또는 대규모적인 지진과 화산 폭발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을 것이다. 문명은 붕괴되었고 인류 뿐만 아니라대부분의 생물들이 죽었다. 지구는 핵겨울과 유사한 잿빛 환경이 되었다. 소수의 생존자들이 이런 극한의 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인다.

 

영화는 한 부자(父子)의 생존기를 어두운 화면을 배경으로 그린다. 둘은 시시각각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 먹을 것을 찾아 남쪽으로 내려간다.남은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적이다. 내가 살기 위하여 남의 식량을 강탈해야 하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뺏아야 한다. 식인(食人)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영화를 볼 때보다 소설을 읽었을 때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더욱 회의를 했던 것 같다.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인간이 착한 양처럼 행동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인간이기를 포기할 수도 없다.

 

영화에 나오는 소년은 선(善)의 상징으로 강하게 묘사되고 있다. 소년은 어려운 사람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버리지 않는다. 그 때문에 아버지와 마찰을 일으키기도 한다.때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선악의 구별을해서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타적 태도는 분명히 생존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그러나 그것 역시 인간 본성의 한 측면이다.그것마저 없다면 인간에게서 희망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떠한 절망에서도 꺼지지 않는 가슴속의 '불씨'야말로 이 영화가 강조하는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영화와 같은 환경에서 생존자들이 그나마 오래 생존할 수 있는 확률은 어느 쪽이 높을까? 대답은 명확하다. 서로 도와주고 먹을 것을 나눔으로써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안정된 집단을 이루는 것이다. 개별적으로 흩어져 싸움으로써 에너지는 더 소진되고 죽음은 빨리 찾아온다. 그런 상황에서는 영화처럼 주인공들이 지하에 있는 풍부한 양식을 발견하지만 추적자가 두려워 포기하고 떠나야만 한다. 서로 자기만 살려다가 결국은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다.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저런 상황이라면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는생각이 내내 떠나지 않았다. 주인공처럼 버텨낼 힘과 용기가 있었을까.

 

소년을 지켜주던 아버지는 죽지만 다행히 소년은 '착한' 가족을 만난다. 이 가족은 전부터두 부자를 뒤쫓아오고 있었다. 아마 이들을 관찰하면서 동질감을 느끼고 보호하고픈 마음이있었던 게 틀림이 없다. 그들이 데리고 있는 개를 보면서 오래 전에 들었던 개소리를 소년은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안심을 했을 것이다. 그것은 혼자 남은 소년을 안타까워 하는 관객의 마음이기도 하다.작은 불씨가 모이면 모닥불이 되고, 그 모닥불은 새로운 세상을 여는 희망의 문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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