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아픔이 아픔을 구원한다

샌. 2010. 1. 5. 11:45

집에서 놀다 보니 책을 읽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제는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었다. 이야기가 손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어불과 한나절이 안 걸려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었다. 그 순간 '아픔이 아픔을 구원한다'는 말이불현듯 떠올랐다. 이 책은 인간의 본질과 아픔에 대해서 많이 생각케 해 주는데,특히 주인공인 유정의 케릭터가 마음에 든다. 그녀는 잘 나가는 집안에서 자라 대학 교수가 되지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고통 받는다. 세 번이나 자살을 기도할 정도로 방황과 일탈적인 행동을 서슴치 않는다. 그녀가 사형수인 윤수를 만나면서 둘은 내적인 아픔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위로받으며 치유되어진다.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의 내면은 동정이나 연민 이상의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힘이 있다. 그 아픔에 의한 동질감이 둘의 마음에 공명을 일으킨다.

소설에는 유정의 생각을 나타내는 이런 구절이나온다. '내가 엄마와 우리 식구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들이 돈이 많고 그들이 자신이 속물들임을 위장하기 위해 흔희 쓰는, 내게 돈만 있는 것이 아니란다, 하는 표정으로 문화예술가를 자처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실은 뼛속까지 외롭고 스스로 홀로 앉은 밤이면 가여운 것이 사실인데도, 그것을 위장할 기회와 도구를 너무 많이 가지고 있음으로 해서, 실은 스스로가 외롭고 가엾고 고립된 인간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기회를 늘 박탈당하고 있다는 데 있었다. 한마디로 그들은 생과 정면으로 마주칠 기회를 늘 잃고 있는 셈이었다.' 생과 정면으로 마주치기! 유정과 윤수가 '진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어두운 방으로 들어갔듯이 진짜 생의 모습을 회피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진짜 중요한 것이다.

책에는 장마다 옛 사람이나 글의 인용문이 나온다. 옮겨 적어본다.

할렘은 이를테면 뉴욕시와 그리고 도심지에서 돈을 벌며 사는

부자들에 대한 하느님의 고발이다. 할렘의 유곽과 윤락녀들과

마약중독자들과 기타 모든 것들은 파크 애비뉴의 의젓하고

세련된 가식 속에서 무수히 행해지는 이혼과 음행의 거울이요

우리 사회전반에 대한 하느님의 평가이다.

- 토마스 머튼

느끼지 못하는 것보다 사악한 것은 한 가지뿐이지.

그건 당신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거야.

- 찰스 프레드 앨퍼드 <인간은 왜 악에 굴복하는가>

사람을 괴물처럼 대하면 그 사람은 괴물이 된다.

- 범죄 심리학

왕이시여! 이 때문에 울지 마소서.

저들이나 또 다른 이들 가운데 그토록 짧은 삶에서

삶보다 죽음을 한 번 이상 원치 않은 이가 없나이다.

- 헤로도투스 <역사>

슬픔 속에서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

눈물에 젖은 채 내일을 갈망하며 밤을 지새우지 못한 사람

그들은 모른다 성스러운 힘을

- 괴테

네가 어떤 사람인지 내게 말해보아라.

네가 어떤 하느님을 믿고 있는지 내가 말해주리라.

- 니체

조용히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 없이 기다려라.

왜냐하면 희망은 그릇된 것에 대한 희망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 없이 기다려라.

왜냐하면 사랑도 그릇된 사랑에 대한 사랑일 것이기 때문이다.

- T. S. 엘리어트 <네 개의 사중주>

누구에게나 슬픔은 있다. 이것은 자신이 남에게 줄 수 없는 재산이다.

모든 것을 남에게 줄 수는 있지만 자신만은 남에게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이 소유한 비극은 있다.

그 비극은 영원히 자신이 소유해야 할 상흔이다.

눈물의 강, 슬픔의 강, 통곡의 강,

슬픔은 재산과는 달리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 분배되어 있다.

- 박삼중 스님

사람들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대지에 입을 맞추세요.

그리고 온 세상을 향하여큰 소리로 외치세요.

"나는 살인자입니다" 하고.

-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저는 기적을 믿지 않습니다.

다만 기적에 의지해 살아갈 뿐입니다.

- 칼 라너

주위의 모든 사람이 진흙 같은 빵 한 조각 때문에 투쟁할 때

고상한 즐거움을 누리는 게 옳다고 할 수 있을까?

- 크로포트킨

나는 인생을 즐기고자 신께 모든 것을 원했다.

그러나 신은 모든 것을 즐기게 하시려고 내게 인생을 주셨다.

내가 신에게 원했던 것은 무엇 하나 들어주시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당신의 뜻대로라고 희망했던 것은 모두 다 들어주셨다.

- 이태리 토리노에 있는 무명용사의 비

사형제도는 그 벌을 당하는 자들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제도이다. 정신적으로 수개월 내지 수년 동안 육체적으로

생명이 다하지 않은 제 몸뚱이가 둘로 잘리는 절망적이고도

잔인한 시간 동안 그 형벌을 당하는 사형수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다른 품위라고는 아무것도 없으니, 오직 진실이라는 품위라도

회복할 수 있도록 이 형별을 제 이름으로 불러서 그것이 본질적으로

어떤지 인정하자. 사형의 본질은 복수라는 것을.

- 알베르 카뮈 <단두대에 대한 성찰>

우리는 곰팡내 나는 지하실과 비좁은 감옥에 앉아서

금가고 파괴적인 운명의 기습을 받아 신음한다. 우리는 결국 사물에

그릇된 광채와 잘못된 존엄성을 더 이상 부여하지 않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구제받지 못한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해야 한다.

- 나치의 감옥에서 죽은, 알프레드 델프

너무 늦게 당신을 사랑했나이다.

이토록 오래되어도 늘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이다지도 늦게야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나이다.

- 성 아우구스틴

신비롭게도 사람이 삶을 배우는 데 일생이 걸린다.

더더욱 신비롭게도 사람이 죽음을 배우는 데 또 일생이 걸린다.

- 세네카

그가 못된 행실을 한 자라고 해서 사람이 죽는 것을 내가 기뻐하겠느냐?

주 야훼가 하는 말이다.

그런 사람이라도 그 가던 길에서 발길을 돌려 살게 되는 것이

어찌 내 기쁨이 되지 않겠느냐?

- 구약 <에제키엘서>

나는 항상 이것만은 말하고 싶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틀림없다고 확신하는 것은

우리들은 언제나 어려움에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어려운 쪽이 바로 우리들의 몫이지요.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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