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셴린 선생이 쓴 <인생>이란 책에는 ‘노년에 하지 말아야 할 10가지’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람이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은 언제나 있는 법이지만, 특히 늙어서 조심해야 할 것으로 선생이 골라 놓은 10가지는 다음과 같다.
1. 말을 삼가자.
2. 나이로 유세 떨지 말자.
3. 사고가 경직되는 것을 막자.
4. 세월에 불복하자.
5. 할 일 없음을 걱정하자.
6. 무용담으로 허송세월하지 말자.
7. 세상과 벽을 쌓지 말자.
8. 늙음과 가난을 탄식하지 말자.
9. 죽음에 연연하지 말자.
10. 세상을 증오하지 말자.
선생의 아흔 인생 경험에서 나온 충고들인데 이 중에서 ‘말을 삼가자’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말을 삼가야 하는 것에 노소의 구별이 있으랴마는 특히 노인의 수다스러움은 누구에게나 참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대개 노인의 수다란 것이 고리타분한 옛 생각에 젖어 하는 잔소리에 불과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본인이야 지당하고 옳은 소리라고 하겠지만 듣는 사람도 꼭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자고로 나이가 들수록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는 잘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최근에 직장에서 정년퇴임을 한 분이 있었는데 나가는 날까지 직원들을 붙들어 놓고 잔소리를 늘어놓는 통에 모두가 학을 떼었다. 사람들이 싫증을 내든 말든 회의시간을 넘어서까지 이런저런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6.2 지방선거에서 중립을 지키고 몸조심하라는 당부에서부터 직장 내 사소한 일까지 염려하며 당부하는 얘기였는데, 본인은 자신의 책임감을 다한다고 그랬는지 몰라도 뒤에서 나오는 주책이라는 소리를 아마 본인만 몰랐을 것이다. 대개 퇴임을 앞두고는 업무를 밑의 사람에게 맡기고 자신은 뒤로 물러가는 게 후임자를 위한 예의이기도 하다. 퇴임 바로 전날까지도 미주알고주알 간섭하는 것은 쓸데없는 노인의 걱정이나 수다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이런 분은 퇴직한 뒤에 일 없어진 상태를 어떻게 견딜 것인지 염려가 된다. 그분을 보면서 나이가 들수록 말이나 행동에 더욱 조신하고 삼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더 들었다.
그런데 내 경우를 보아도 나이가 들수록 말이 많아지고 있는 게 확실하다. 더 많이 들을 줄 알아야 되는데 반대로 내 생각을 드러내기에 바쁘다. 안 그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막상 자리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 알면서도 되지 않으니 이것이 나이 들어가는 병폐가 아닌가 싶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도 말에 다름 아니니 이것도 말 많아지는 증상의 하나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나 블로그의 글은 나 혼자 하는 독백이니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리 견책할 일은 아니지 싶다. 나이를 떠나 말 많은 것은 단점이 될지언정 장점이 될 수는 없다. 더구나 노인이 되어 나설 데 안 나설 데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또 말이 많아지면 반드시 말실수가 따른다. 젊은이야 애교로 봐줄 수도 있지만 나이 많은 경우야 주책이라고밖에 할 수 없지 않은가.
古人曰 言出如箭 不可輕發 一入人耳 有力難發
옛사람이 말씀하셨다. 말은 화살과 같아 가볍게 할 수 없다. 한 번 다른 사람의 귀에 들어가면 힘이 있어도 뽑기 어렵다.
이것은 히말라야에 함께 갔던 동료가 선암사에서 만난 글이라며 카페에 올린 것이다. 선암사의 공양드리는 곳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는 걸 보았다며 마음의 경계로 삼고 싶다고 했다. 무심코 내뱉은 말이 화살이나 비수가 되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찌르지 않도록 나 역시 조심하고 경계해야겠다. 말의 화살은 보이지 않으므로 더욱 조심할 일이다. 그러자면 되도록 말을 삼가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요사이는 말을 경박하게 함부로 한다는 뒷소리까지 듣고 있는 터다. 늙어가면서 최소한 말에서나마 주책이라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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