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지하철에서 생긴 일

샌. 2010. 4. 27. 10:18

지하철로 출퇴근하다보니 가끔 험상궂은 광경을 만나기도 한다. 며칠 전 출근길이었다. 차에 타고부터 젊은 여자의 전화하는 소리가 무척 귀에 거슬렸다. 조용한 전철 안에서의 육두문자와 짜증이 섞인 찢어지는 목소리는 누구나 짜증을 낼 만 했다. 여러 사람이 눈총을 주는 것 같았지만 독불장군이고 안하무인이었다. 더구나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경로석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서는 그 야단이었다. 누가 한 마디 해 주지 않나 싶었는데 맞은편에 앉아 있던 초노의 할아버지가 지하철에서 공중도덕을 지키자며 젊잖게 타일렀다. 그런데 생긴 꼬락서니가 “죄송합니다.” 하고 미안해 할 여자가 애당초 아니었다. 네가 뭔데 참견하느냐고 바로 앙칼진 대꾸가 돌아왔다. 그것도 연세 많은 할아버지에게 처음부터 반말이었다. 그리고는 두 사람의 설전이 이어졌는데 여자의 당돌함이 상상외여서 듣는 나도 가슴이 철렁했다. “넌 부모도 없냐?” “부모 있다.” “싸가지 없는 것 같으니라고.” “니도 싸가지 없는 건 마찬가지다.” 여자는 한 마디도 지지 않았다. 뭐 저런 년이 있나, 생각 같아서는 달려가서 주둥이를 갈겨주고 싶었다. 할아버지도 성질이 나셨는지 그 여자 앞에까지 나갔지만 주먹을 올리지는 못했다. 싸우는 와중에도 여자는 여전히 같은 톤으로 통화를 계속했다. 뻔뻔한 정도에 기가 찰 노릇이었다. 젊은 여자가 너무 당돌하니 시간이 지날수록 할아버지의 입장만 점점 난처해져 갔다. 주위에서 거들어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여자가 한 말 중에 나를 뜨끔하게 한 것이 있었다. “넌 나무랄 자격 있어?” 물론 이것은 궁지에 몰린 자가 마지막 도피로 하는 말인 줄은 안다. 또한 여자가 그런 말 할 자격은 도무지 없었고 어울리지도 않았다. 그런데 생뚱맞게도 그 상황에서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시오.”라는 예수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여자가 일면 불쌍하게 여겨졌다. 저 여자는 내면에 어떤 상처나 분노가 잠재되어 있어서 저렇게 악다구니로 반항할 수밖에 없을까? 떡하니 경로석에 앉아서는 악에 받치듯 통화를 해야 했을까? 단순히 무례한 행동을 넘어 세상을 향한 울분의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 당황스러웠다.


굳이 도덕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여자의 행동은 용서받지 못할 행패였다. 타인을 배려하는 공중의식이 없다면 인간세상은 야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여자의 못된 행동이 그런 사실을 각성시켜 주었다. 만약 앞으로 다시 이런 상황과 마주친다면 난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만약 내 앞자리나 옆에서 그런 사람을 본다면 그냥 침묵하며 참고 있어야 할까? 아니면 용감하게 나서서 나무라야 할까? 그러다가 성질 더러운 연놈을 만나 감당하지도 못할 싸움이 벌어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난 욕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는데 도리어 창피나 당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이번 일을 생각하면 왠지 더 조심스러워만 질 것 같다. 세상에는 분명 고귀한 사람과 비천한 사람이 있다. 과거에는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신분이 정해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직 자신의 생각이나 행실로 고귀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비천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남에게 손가락질 받는 것에 누구를 탓하랴. 지하철에서 한 바탕 소동을 피우고 거만하게 걸어 나가는 그 여자의 뒷모습은 미스 코리아가 부럽지 않은 몸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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