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숲에 든다. 은고개를 들머리로 하여 샘재로 내려온 긴 산길이다. 햇볕은 따가우나 바람 서늘하다. 숲에 들면 자질구레한 세상사의 시름은 눈 녹듯 사라진다. 나무 그늘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는다. 주위는 온통 초록의 바다다. 자궁 속에 있는 태아의 편안함이 이러할지 모른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온종일 가만히 있어도 지루하지 않겠다. 그러나 길은 앞으로 열려 있고 새로운 길 또한 걸어보고 싶다. 벌봉에 이른다. 벌봉[蜂峰]은 바위로 된 봉우리인데 생긴 모양이 벌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지금은 나무가 우거져 전체 모습이 잘 파악되지 않는다. 벌봉은 높이가 512m로 수어장대(497m)보다 더 높다. 김훈의 에 보면 청나라군이 이곳에서 화포로 성안을 포격했다는 내용이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