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6

낙엽 / 복효근

떨어지는 순간은 길어야 십여 초 그 다음은 스스로의 일조차 아닌 것을 무엇이 두려워 매달린 채 밤낮 떨었을까 애착을 놓으면서부터 물드는 노을빛 아름다움 마침내 그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죽음에 눈을 맞추는 저 찬란한 투 신. - 낙엽 / 복효근 '투신'은 적극적인 의지가 반영된 말이다. '낙하'가 아니라 '투신'이라고 한 데에 이 시가 살아 있다. '투신'은 죽음을 회피하거나 죽음에서 도망가는 게 아니라, 죽음을 기꺼이 수용하고 맞이하는 태도다. 그래서 아름답고 찬란하다. 가을이 짙어진다. 어디에나 낙엽이 가까이 있다. 발에 밟혀 바삭거리는 낙엽은 재잘대는 아이들처럼 명랑하다. 낙엽한테는 거부의 몸짓을 찾을 수 없다. 생의 막바지에서 왜 노을빛처럼 아름다운지를 생각한다. 올 가을에 낙엽을 보며 내가 떠올려야..

시읽는기쁨 2021.10.30

첫눈이 내리다

뒷산을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에 올겨울의 첫눈을 맞았다. 바람에 휘날리는 눈을 온몸으로 받았다. 10여 분간 내리더니 이내 그쳐 땅에 쌓일 정도는 아니었다. 맛보기로 보여준 것 같다. 초등학교에서 나오던 꼬마가 손을 내밀며 "눈이네요!" 한다. 다른 꼬마는 생긋 웃으며 내 옷에 붙은 눈을 털어준다. 한 할머니는 자동차 유리문을 내리고 환한 얼굴로 손주에게 눈 구경을 시켜준다. 한 살 정도 된 아기도 해맑게 웃는다. 남녀노소 모든 이의 얼굴에 미소와 탄성을 자아내는 첫눈이다. 아파트 뜰에 산길에 생을 마감한 낙엽이 뒹굴고 있다. 각각 색깔은 달라도 생명의 원천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모두 가볍고 아름답다. 이 시기면 듣고 싶은 노래가 있다. '고엽(枯葉)'으로 알려진 'Autumn Leaves'다. 에릭 클랩튼..

사진속일상 2013.11.18

조용한 일 / 김사인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조용한 일 / 김사인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는 나뭇잎이 아닌가 싶다. 너무나 흔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지만 색깔이나 모양이 나뭇잎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는 것 같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종류마다 잎의 모양이나 색깔이 다르고, 그 미묘한 차이가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잎의 부드러운 감촉도 좋고, 실핏줄 같은 잎맥도 예쁘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뭇잎의 춤은 또 어떤가. 가을 단풍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깔과 풍경을 연출한다. 나뭇잎은 나무에서 돋아나 평생을 나무를 위해 일하고, 나무의 성장을 돕는다. 물과 공기와 햇빛 만..

시읽는기쁨 2008.08.22

낙엽은 / 박민수

낙엽은 위에서 아래로 내리지 황금빛 가슴으로 가진 것 모두 제 자리에 두고 낙엽은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내리지 역사를 넘어 침묵의 세계 낙엽은 그 비밀을 알지 땅갈피 귀 대고 마침내 엿듣는 세상의 말씀 그 소멸의 꿈을 알지 가진 것 모두 제 자리에 두고 한 줌 흙이 되는 것 그것이 자유라고 말하는 땅의 말씀을 알지 낙엽은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내리며 몸을 낮추어도 더없이 깊어오는 충만감 그 아름다움을 알지 낙엽은 - 낙엽은 / 박민수 한여름의 무성했던 잎사귀들은 자신의 원래 자리인 땅을 찾아 떠난다. 가을은 만물이 근본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그리고 우리도 돌아감에 대해 생각한다. 지상에서 모든 것 놓아두고-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했던 것들 - 제 자리에 놓아두고 홀로 길 떠나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가..

시읽는기쁨 2006.10.25

낙엽 / 구르몽

시몬, 나무 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떨어져 땅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해질 무렵 낙엽 모양은 쓸쓸하다. 바람에 흩어지며 낙엽은 상냥히 외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 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 되리니 가까이 오라, 밤이 오고 바람이 분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 낙엽, 구르몽(R. Gurmon) 아침에 흐린 하늘이 낮이 되면서 개이더니 지금은 가을 햇살이 눈부시다. 이런 날은 하던 일..

시읽는기쁨 2003.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