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8

사랑방 / 함순례

울 아부지 서른, 울 엄니 스물 셋 꽃아씨, 아부지 투덕한 살집만 믿고 신접살림 차렸다는디, 기둥 세우고, 짚과 흙 찰박찰박 벽 다져, 오로지 두 양반 손으로 집칸 올렸다는디, 부쳐먹을 땅뙈기가 없는 기라 내사 남아도는 게 힘이여 붉은 동빛 박지르며 집을 나서면, 이윽이윽 해가 지고, 어둠별 묻히고야 삽작을 밀고 들어섰다는디, 한 해 두 해 불어나는 전답, 울 엄니 아부지 얼굴만 봐도 배가 불렀다는디.... 늘어나는 것이 어디 그뿐이랴 울 엄니 이태가 멀다 실제 배가 불렀다는디, 갈이질에, 새끼들 가동질에, 하루 해가 지는지 가는지 하 정신 없었다는디, 울 아부지 저녁밥 안치는 엄니 그대로 부엌바닥에 자빠뜨린 거라 그 징헌 꽃이 셋째 딸년 나였더란다 첫국밥 수저질이 느슨할 밖에.... 임자 암 걱정 말어..

시읽는기쁨 2023.06.24

수컷의 유효기간

동물 수컷은 나이 들고 힘이 떨어지면 쓸모가 없어진다. 생식 기능이 없고, 사냥도 못 하고, 무리를 지켜주지도 못한다면 수컷의 가치를 어디서 찾겠는가. 반면에 보살핌과 살림이 역할인 암컷은 늙어서도 효용가치가 남아 있다. 최소한 음식을 장만하고 손주를 봐줄 수는 있다. 그래서 암컷의 평균수명이 수컷보다 긴 것은 자연선택적으로 충분히 납득이 된다. 인간만 아니라 다른 동물도 대부분 암컷의 수명이 수컷보다 20% 정도 길다. 백수의 왕자라는 사자의 세계에서 늙은 수사자는 천덕꾸러기다. 힘에 부쳐서 젊은 수사자에게 패하면 무리에서 쫓겨나고 광야를 헤매다가 죽는다. 그나마 암사자가 사냥해 오는 먹이를 받아먹다가 졸지에 혼자가 되면 제 먹이조차 구하지 못한다. 무리의 생존에 방해가 되는 늙은 수사자는 가차 없이 ..

참살이의꿈 2020.08.03

찾습니다 / 이영혜

부풀린 어깨에 가끔씩 포효 소리 제법 크지만, 낮잠과 하품으로 하루를 때우는, 허세의 갈기 무성한 수사자 말고 해만 넘어가면 약한 먹잇감 찾아 눈에 쌍심지 돋우는, 뱃속까지 시커면, 욕망의 윤기 잘잘 흐르는 음흉한 늑대 말고 훔친 것도 좋아, 높은 놈 먹다 버린 것도 좋아, 패거리로 몰려다니길 즐겨 하는, 웃음도 비열한 하이에나 말고 수천 권 뜯어먹은 지성인 척 턱수염 도도하게 으스대지만, 강자 앞에선 아첨의 목소리로 선한 초식동물인 척하는, 이중인격 비굴한 염소도 말고 아무데서나 혀 빼고 군침 흘려 대며, 할 소리 안 할 소리 쓸데없이 짖어 대거나 아무나 물어뜯는, 날카로운 야성의 송곳니는 유전자에서 사라져 버린 지 오래인, 잡개는 더욱 말고 높은 하늘 향해 한 자세로 한 몸 꼿꼿이 세운 한 향기 한 ..

시읽는기쁨 2018.01.30

인생을 향유하는 능력

분당을 지나는 탄천 산책로를 저녁나절에 걸을 때가 있다. 도시를 관통하는 위치 탓인지 늘 운동 나온 사람들이 많다. 넓은 공터에서는 함께 모여 에어로빅을 하는 팀도 있다.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힘찬 기합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린다. 그 소리만 들어도 절로 기운이 솟는다. 가까이 가서 보면 대부분이 아줌마들이다. 백 명은 넘어 보이는데 남자는 가뭄에 콩나물 나듯 서넛 정도 끼어 있을 뿐이다. 마음은 있어도 쑥스러워서 들어서지 못할 것 같다. 반면에 여자들은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없이 리듬에 몸을 맡기고 땀을 흘린다. 무척 적극적이다. 누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남녀 성의 구분이 뚜렷이 나타난다. 노년이 되면 여자들이 훨씬 더 활동적이면서 다양한 관계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대신에 남자들은 퇴직하고 나서 움츠러든다..

참살이의꿈 2017.08.20

남자의 탄생

한 개인의 성장사를 통해 한국 남자의 의식 구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지은이의 유소년기 개인적 체험을 중심으로 한 인성 형성 과정이 펼쳐진다. 부제가 '한 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보는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 과정'이다. 요사이 젊은 남자는 그렇지 않지만 전통적 한국 남자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이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은 똑같이 닮으면서 그 과정이 반복된다. 아들을 편애하는 어머니의 역할도 더해져 한국 특유의 가족문화가 된다. 지은이는 한국 남자의 특징을 '동굴 속 황제'라 부른다. 한국의 가정에는 아버지 공간과 어머니 공간이 분리되어 있었다. 상과 하의 위계질서로 구분된 공간은 아이의 무의식에 지속해서 영향을 끼친다. 거기에 어머니의 배타적인 사랑..

읽고본느낌 2015.11.11

앉아서 오줌 누는 남자

한국 남자들 열 명 중 셋이 집에서는 앉아서 오줌을 눈다는 조사 결과를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남자가 앉아서 오줌을 누는것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사실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자가 서서 오줌을 누는 것 만큼이나 어색하게 느껴졌다. 오줌을 누는 자세는 문화나 관습이라기보다는 남녀의 신체 구조상의 차이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좌변기에 서서 오줌을 누면 물방울이 튀어서 지저분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나 역시 집에서 조심해서 볼 일을 보라는 핀잔을 듣곤 한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앉아서 오줌을 누라는 권유를 받지는 않았다. 그런 자세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차에 접한 30 %라는 통계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성 시대의 도래를 이 사실에서도 실감할..

길위의단상 2009.03.07

다시 남자를 위하여 / 문정희

요새는 왜 사나이를 만나기가 힘들지 싱싱하게 몸부림치는 가물치처럼 온 몸을 던져오는 거대한 파도를 몰래 숨어 해치우는 누우렇고 나약한 잡 것들 뿐 눈에 띌까 어슬렁거리는 초라한 잡종들 뿐 눈부신 야생마는 만나기가 어렵지 여권 운동가들이 저지른 일 중에 가장 큰 실수는 바로 세상에서 멋진 잡놈들을 추방해 버린 것은 아닐까 핑계 대기 쉬운 말로 산업사회 탓인가 그들의 빛나는 이빨을 뽑아 내고 그들의 거친 머리칼을 솎아 내고 그들의 발에 제지의 쇠고리를 채워버린 것은 누구인가 그건 너무 슬픈 일이야 여자들은 누구나 마음 속 깊이 야성의 사나이를 만나고 싶어하는 걸 갈증처럼 바람둥이에 휘말려 한 평생을 던져버리고 싶은 걸 안토니우스 시저 그리고 안록산에게 무너진 현종을 봐 그뿐인가 나폴레옹 너는 뭐며 심지어 돈..

시읽는기쁨 2005.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