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6

스며드는 것 /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 스며드는 것 / 안도현 낚시꾼들이 손맛을 거리낌 없이 즐기는 건 물고기가 고통을 모를 것이라는 가정을 하기 때문이다. 바늘에 입이 꿰인 채 살려고 발버둥 치는 물고기의 비명을 듣는다면 차마 낚시를 취미로 하지는 못할 것이다. 동물은 말할 나위가 없고 식물도 감각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아직은 우리의 지식이 일천할 뿐,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

시읽는기쁨 2014.06.30

병아리 던지기 / 김순일

누우떼가 아프리카 대륙이 꺼지게 달려간다 건기를 맞은 수천 마리 누우떼가 싱싱한 풀밭을 찾아 먼지 자욱한 들판을 지나 강을 건너간다 도룡농 도마뱀 물고기 따위나 잡아먹으며 늘 배가 안차서 걸근거리던 악어들이 때를 만나 강목을 지키고 있다가 모처럼 포식을 하고 비단잠 속으로 들어가려는 참인데 뒤따라 강을 건너던 누우란 놈 겁도 없이 악어의 등때기며 머리통을 밟고 건너가는구나 요녀석 봐라 선잠을 깬 악어가 누우의 허벅지를 물고 짓이겨 댔는데 이거 어쩐 일인가 요단강 건너는 줄 알았던 누우의 허벅지엔 이빨자국 하나 없이 멀쩡하구나 오금아 날 살려라 혼 나간 누우란 놈 허둥지둥 강을 건너갈 때 악어녀석 벙긋벙긋 꽃잠 속으로 드는구나 아이들이 놀이를 하고 있다 갓깬 병아리 던지기 놀이를 하고 있다 사층 아파트 창..

시읽는기쁨 2013.10.17

눈비를 맞으며 자유롭게 자라게 하라

얼마 전에 SBS TV에서 ‘마지막 자연인’이라는 다소 엉뚱한 제목으로 산 속에서 혼자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방송되었다. 나도 우연히 그 내용을 볼 수 있었다. 장면 중에 재래식 화장실의 똥을 먹는 개가 잠시 비쳤는데 그걸 두고 일부 시청자들이 동물 학대라며 방송국에 항의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급기야는 산골 오두막으로 동물보호단체에서 찾아가 호들갑을 떨었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개나 닭은 모두 놓아 먹였다. 방에 동생이 똥을 싸면 할머니가 “도꾸, 도꾸”하고 개를 불렀다. 그러면 어디선가 비호 같이 달려와서 깨끗이 처리했다. 골목길에 아이들이 눈 똥도 모두 개들의 몫이었다. 개가 똥을 먹는 건 너무나 자연스럽게 보며 컸다. 그때의 개들은 대부분 똥개라 부르는 종류였는데 덩치고 컸고 힘도 좋..

길위의단상 2011.08.07

영역 / 신현정

산기슭 집을 샀더니 산이 딸려 왔다 산에 오소리 발자국 나있고 쪽제비가 헤집고 다닌 흔적이 역력하다 제비꽃 붓꽃 산나리 피고 멀리 천국에 사는 아기들이 소풍 와서는 똥을 싸고 갔는지 여기 저기 애기똥풀꽃 피고 떡갈나무는 까치부부가 독채를 들었다 풀섶에선 사마귀들이 덜컥덜컥 턱을 부딪히며 싸우는데 허 나도 질세라 집 있는 데서 오십 보 백 보는 더 걸어나가서 오줌이라도 누고 오고 그러는 것이다 - 영역 / 신현정 영역 다툼은 동물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의식이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 배경에는 동물적 특징이 잠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을 털 없는 원숭이라고 한 재미있는 표현도 있다. 새로 직장을 옮기면서 그런 영역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자격지심인지 모..

시읽는기쁨 2009.03.06

개와 고양이

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그중에서도 개에 대해서는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 아주 어렸을 때 '도꾸'라고 불렀던 개가 있었다. 어린 동생들이 방에서 응아를 하면 어른들은 먼저 개를 불렀다. "도꾸" "도꾸"하고 부르면 어디선가 달려와서 응아를 깨끗이 핥아먹었다. 뒷자리는 걸레로 닦아내면 되었다. 당시는 아이들 응아는 그냥 방바닥에 누게 했고, 밖에서 놀던 개가 방안까지 들어와 그 뒷처리를 했다. 내 덩치보다도 더 컸던 도꾸는 어린 내가 가까워지기에는 너무 힘이 세고 사나웠으며 더러웠다. 그래서 내 어린 시절 유일하게 기억나는 도꾸와도 친근하게 지냈던 기억은 없다. 수년간 식구처럼 지냈을 그 개가 어느 날 멍석에 둘둘 말리고 몽둥이찜질을 받으며 죽어가는 모습을 아프게 바라보았던 슬픈 기억만이 남아 있다..

길위의단상 2008.01.21

개들은 말한다 / 정현종

개들은 말한다 나쁜 개를 보면 말한다 저런 사람 같은 놈 이리들은 여우들은 뱀들은 말한다 지네 종족이 나쁘면 저런 사람 같으니라구 한국산 호랑이가 멸종된 건 개와 이리와 여우들 탓이 아니지 않은가 한국산 호랑이의 멸종은 전설의 멸종 깨끗한 힘의 멸종 용기의 멸종과 더불어 진행된 게 아닌가 날(生) 기운의 감소 착한 의지의 감소 제 정신의 감소와 더불어 진행된 게 아닌가 한국산 호랑이의 멸종은 하여간 개와 이리와 여우들 탓은 아니지 않은가 - 개들은 말한다 / 정현종 지난 여름 피서철에도 해수욕장의 무질서와 쓰레기가 문제가 되었다. 그때 어느 라디오 프로에서 진행자가 한탄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걸 볼 때마다 사람이 짐승처럼 보여요." 말이 바른 말이지 어느 짐승이 남에게 피해를 주든 말든 뒤를 지저분..

시읽는기쁨 2005.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