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개들은 말한다 / 정현종

샌. 2005. 9. 16. 11:27

개들은 말한다

나쁜 개를 보면 말한다

저런 사람 같은 놈

이리들은 여우들은 뱀들은

말한다 지네 종족이 나쁘면

저런 사람 같으니라구

 

한국산 호랑이가

멸종된 건

개와 이리와 여우들 탓이 아니지 않은가

한국산 호랑이의 멸종은

전설의 멸종

깨끗한 힘의 멸종

용기의 멸종과 더불어 진행된 게 아닌가

날(生) 기운의 감소

착한 의지의 감소

제 정신의 감소와 더불어 진행된 게 아닌가

한국산 호랑이의 멸종은 하여간

개와 이리와 여우들 탓은 아니지 않은가

 

- 개들은 말한다 / 정현종

 

지난 여름 피서철에도 해수욕장의 무질서와 쓰레기가 문제가 되었다. 그때 어느 라디오 프로에서 진행자가 한탄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걸 볼 때마다 사람이 짐승처럼 보여요."

 

말이 바른 말이지 어느 짐승이 남에게 피해를 주든 말든 뒤를 지저분하게 해놓는가? 산에 많은 동물들이 살고 있지만, 그들 때문에 산이 더러워졌다는 소리는 여태껏 들어보지 못했다.

 

인간이 영리하다지만 다른 말로 하면 교활하고 영악하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또 인간 만큼 잔인한 동물도 없다. 수많은 생물의 종들을 멸종시킨 것은 둘째치고 자기들끼리도 못 잡아먹어서 난리를 치고 있다. 동물도 자기 영역을 가지고 있어 영역 싸움을 하지만 인간처럼 패거리를 이루어 남의 영역을 침범하며 이념이 다르다고 또는 종교가 다르다고 동족을죽이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보통 하는 말로 남자를 늑대에 비유하고, 여우같은 여자라는 말도 자주 쓴다. 늑대와 여우가 들으면 섭섭해도 한참 섭섭할 일이다. 사실 사람만큼 계산적이고 욕망을 무한 충족시키려는 동물도 없다. 늑대와 여우도 자기네 세계에서 못된 동족을 보면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런 사람 같은 놈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