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그리운 강 / 도종환

샌. 2005. 8. 27. 09:12

사람들은 늘 바다로 나갈 일을 꿈꾸지만

나는 아무래도 강으로 가야겠다

가없이 넓고 크고 자유로운 세계에 대한 꿈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작고 따뜻한 물소리에서

다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해일이 되어 가까운 마을부터 휩쓸어버리거나

이 세상을 차갑고 거대한 물로 덮어버린 뒤

물보라를 날리며 배 한 척을 저어나가는 일이

한 번쯤 있었으면 하지만

너무 크고 넓어서 많은 것을 가졌어도

아무 것도 손에 쥐지 못한 것처럼 공허한

바다가 아니라 쏘가리 치리 동자개 몇 마리만으로도

넉넉할 수 있는 강으로 가고 싶다

급하게 달려가는 사나운 물살이 아니라

여유 있게 흐르면서도 온 들을 적시며 가는 물줄기와

물살에 유연하게 다듬어졌어도 속으론 참 단단한

자갈밭을 지나 천천히 걸어오고 싶다

욕심을 버려서 편안한 물빛을 따라 흐르고 싶다

너무 많은 갈매기 가마우지 떼가 한꺼번에 내려앉고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바다가 아니라

내게 와 쉬고 싶은 몇 마리 새들과도

얼마든지 외롭지 않을 강으로 가고 싶다

은백색 물고기 떼를 거느려 남지나해에서

동해까지 거슬러 오르는 힘찬 유영이 아름다운 것도 알지만

할 수만 있다면 한적한 강마을로 돌아가

외로워서 여유롭고 평화로워서 쓸쓸한 집 한 채 짓고

맑고 때 묻지 않은 청년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 강 마을에도 어린 시절부터 내게 길이 되어주던

별이 머리 위에 뜨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호젓한 바람 불어오리니 아무래도

나는 다시 강으로 가야겠다

 

- 그리운 강 / 도종환

 

이젠 산마루가 아니라 깊고 아늑한 골짜기를 걸으리라.

화려하고 장엄한 바다의 일출이 아니라, 강가에 어리는 고요한 낙조를 맞으러 가리라.

많은 것 보다는 적은 것을, 큰 것 보다는 작은 것을....

 

한 때는 파도를 헤치며 그것을 찾아 멀리 멀리 나가기를 갈망했지만, 지금은 짐 다 버리고 가볍게 돌아오는 시간.

폭풍같은 시절은 기꺼이 떠나 보내고, 잔 물결 부서지는 조용한 강변을 찾아가리라.

외롭고 쓸쓸한 그곳에서 내 좋은 사람과 따스히 살고 싶어라.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가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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