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움 3

온유에 대하여 / 마종기

온유에 대하여 이야기하던 그 사람 빈집 안의 작은 불꽃이 오늘은 더욱 맑고 섬세하구나 겨울 아침에 무거운 사람들 모여서 온유의 강을 조용히 건너가느니 주위의 추운 나무들 눈보라 털어내고 눈부신 강의 숨결을 받아 마신다. 말과 숨결로 나를 방문한 온유여, 언 손을 여기 얹고 이마 내리노니 시끄러운 사람들의 도시를 지나 님이여 친구가 어깨 떨며 운다. 그 겸손하고 작은 물 내게 묻어와 떠돌던 날의 더운 몸을 씻어준다. 하루를 마감하는 내 저녁 속의 노을, 가없는 온유의 강이 큰 힘이라니! 나도 저런 색으로 강해지고 싶었다. 불타는 뜬구름도 하나 외롭지 않구나. - 온유溫柔에 대하여 / 마종기 '따뜻할 온(溫)'과 '부드러울 유(柔)', 온유(溫柔)는 참 아름다운 말이다. 사전에는 '성격이나 태도 따위가 온화..

시읽는기쁨 2022.02.15

힘 빼기

어느 운동이나 배울 때는 몸의 힘을 빼라는 주의를 제일 많이 듣는다. 대개 초보자일수록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 뻣뻣하다. 그래서는 공의 궤적이 잘 나올 리 없다. 요사이는 가끔 당구를 치는데 고수로부터 어깨에 힘을 주지 말라는 나무람을 자주 듣는다. 쉬운 것 같아도 잘 안 된다. 그게 수월하게 되면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다는 뜻이리라. 머리를 깎기 위해 가는 미용실에서도 같은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누워 머리를 감을 때마다 목에 힘을 빼라는 부탁을 듣는다. 이발소에서는 엎드려서 머리를 감지만 미용실에서는 반대다. 해 왔던 것과 다르니 무의식적으로 목에 힘을 주는 것 같다. 힘이 들어간다는 건 긴장되거나 상황이 불편할 때 나오는 행동이다. 자연스럽지 못하다. 마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마음..

참살이의꿈 2015.02.20

벌레 / 고미경

나는 뼈가 없는 동물입니다 먼 조상이 뼈와 엿을 바꿔먹었다고도 하고 잘못된 사랑으로 벌을 받아 유전된 것이라고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뼈대 없는 가문에다 역사도 없고 사상도 없다며 나를 천하다고 말합니다 손가락질까지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뼈가 없으니 생각이 없어 좋을 때도 있습니다 생각이 없으니 번뇌도 없습니다 번뇌가 없으니 싸울 일도 없습니다 뼈는 무기입니다 뼈는 칼날입니다 뼈는 주먹입니다 뼈는 증오입니다 나는 뼈가 없어 비무장지대입니다 아니 꽃잎입니다 입술입니다 젖무덤입니다 온몸으로 기어가는 바닥이 나의 하늘입니다 함부로 침 뱉지 마십시오 - 벌레 / 고미경 이제까지는 뼈와 주먹과 칼의 문화가 세상을 지배했다. 약하고 힘 없고 부드러운 것들은 뒷전으로 밀려나서 벌레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이제 세상을 ..

시읽는기쁨 2008.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