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3

사과 한 알

해마다 주로 먹는 과일이 다르다. 어떤 해는 토마토, 어떤 해는 복숭아가 최고의 과일이 된다. 올해는 단연 사과다. 봄부터 습관이 하나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면 사과 한 알을 먹는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어쩌다 그렇게 되었다. 입이 칼칼해서 냉장고에 든 사과를 꺼내 먹었는데 상큼하고 좋았다. 아침에 먹는 사과 한 알은 보약보다 낫다는 말도 생각났다. 그 뒤로 일어나면 자연스레 사과로 손이 가게 되었다. 머리로 하는 행위가 아니라 몸이 저절로 그렇게 움직였다. 가을 들어서는 고향에서 계속 사과가 올라오고 있다. 벌레가 먹어 상품 가치가 없는 것으로 이웃에서 거저 준 것이다. 썩은 데를 도려내면 성한 사과나 별반 차이가 없다. 사는 경우는 낱개로 포장되어 껍질째 먹는 사과를 고른다. 아무래도 정성을 들인..

참살이의꿈 2017.10.15

사과야 미안하다 / 정일근

사과 과수원을 하는 친구가 있다. 사과꽃 속에서 사과가 나오고 사과 속에서 더운 밥이 나온다며, 나무야 고맙다 사과나무야 고맙다, 사과나무 그루 그루마다 꼬박꼬박 절하며 과수원을 돌던 그 친구를 본 적이 있다. 사과꽃이 새치름하게 눈뜨던 저녁이었다. 그 날 나는 천 년에 한 번씩만 사람에게 핀다는 하늘의 사과꽃 향기를 맡았다. 눈 내리는 밤에 친구는 사과를 깎는다. 툭, 칼등으로 쳐서 사과를 혼절시킨 뒤 그 뒤에 친구는 사과를 깎는다. 붉은 사과에 차가운 칼날이 닿기 전에 영혼을 울리는 저 따듯한 생명의 만트라. 사과야 미안하다 사과야 미안하다. 친구가 제 살과 같은 사과를 조심조심 깎는 정갈한 밤, 하늘에 사과꽃 같은 눈꽃이 피고 온 세상에 사과 향기 가득하다. - 사과야 미안하다 / 정일근 얼마 전 ..

시읽는기쁨 2016.07.12

능금 / 김환식

골목시장 앞 날마다 횡단보도를 지키는 할머니의 좌판에서 능금 한 봉지를 샀다 그저 아무런 생각 없이 하나를 꺼내 한 입을 베어 문 것뿐인데 갈라진 씨방 속에는 벌레 한 쌍이 신방을 차려놓았다 엄동설한에 어렵게 얻은 셋방일 터인데 먹고 사는 일에 눈이 멀어버린 나는 남의 속사정도 모르는 불청객처럼 단란한 신방 하나를 훼손해 버렸다 - 능금 / 김환식 시인의 마음씨가 따스하다. 사과 대신 능금이라고 한 것도 정겹다. 지금은 능금이라는 말을 거의 안 쓰지만 어릴 때는 사과가 아니라 능금이라고 불렀다. 시인은 굳이 시장 앞 할머니의 좌판에서 능금을 산다. 흠집이 있어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일 게다. 한 입을 베어 무는데 속에서 벌레가 나온다. 뭐, 이런 사과를 팔았나,원망하는 게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

시읽는기쁨 2011.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