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 5

욕심 속에서 욕심 없이

옛 노트를 열어보니 어느 날의 일기에 아무런 설명 없이 '在欲無欲'이라는 한자가 적혀 있다. 그 네 글자가 내 시선을 오래 붙잡는다. 해석하면 '욕심 속에서 욕심 없이 산다'는 뜻이겠다. 어디서 보고 노트에 옮겨 적은 것일까. 인터넷에서 출처를 찾아보니 '휴휴암주좌선문(休休庵主坐禪文)'이다. 옛날 중국에 있던 휴휴암이라는 절의 주지 스님이 쓴 글로 '在欲無欲'이 나오는 부분은 이렇다. 在欲無欲 居塵離塵 謂之禪 욕심의 세계에 있으나 욕심이 없으며 티끌 세상에 살면서도 번뇌에 빠지지 않는 것이 선(禪)이다. 재욕무욕 거진이진(在欲無欲 居塵離塵) - 욕심의 세계에 있으나 욕심이 없고, 티끌 세상에 살면서 티끌에 오염되지 않는다. 밥을 먹되 밥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고, 돈을 아끼되 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

참살이의꿈 2022.02.03

토굴가 / 나옹

청산림(靑山林) 깊은 골에 일간토굴(一間土窟) 지어놓고 송문(松門)을 반개(半開)하고 석경(石徑)에 배회(俳徊)하니 녹양춘삼월하(綠楊春三月下)에 춘풍(春風)이 건듯 불어 정전(庭前)에 백종화(百種花)는 처처(處處)에 피었는데 풍경(風景)도 좋거니와 물색(物色)이 더욱 좋다 그중에 무슨 일이 세상에 최귀(最貴)한고 일편무위진묘향(一片無爲眞妙香)을 옥로중(玉爐中)에 꽂아두고 적적(寂寂)한 명창하(明窓下)에 묵묵히 홀로 앉아 십년(十年)을 기한정(期限定)코 일대사(一大事)를 궁구(窮究)하니 증전(曾前)에 모르던 일 금일(今日)에야 알았구나 일단고명심지월(一段孤明心地月)은 만고(萬古)에 밝았는데 무명장야업파랑(無明長夜業波浪)에 길 못 찾아 다녔도다 영축산제불회상(靈蹴山諸佛會上) 처처(處處)에 모였거든 소림굴조사..

시읽는기쁨 2022.01.29

도에 이르는 두 가지 길

6세기에 인도에서 중국에 온 달마대사는 선(禪)의 시조로 꼽힌다. 달마에서 전해진 선의 불꽃은 육조 혜능에 이르러 활짝 타오르게 된다. 달마대사는 온종일 침묵을 지키며 벽만 바라보고 참선을 했다고 해서 면벽바라문(面璧婆羅門)이라 불리웠다. 그만큼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정진 수도했다는 뜻이리라. 달마대사가 썼다고 전해지는 글이 '이입사행론(理入四行論)'이다. 도에 이르는 길이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하며, '지성에 의한 길'[理]과 '행위에 의한 길'[行]로 구분한다. 지성에 의한 길은 경전 공부를 통한 깨달음이고, 행위에 의한 길은 삶의 실천을 통한 깨달음이다. 마치 돈오와 점수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뒷날 선사들은 도에 이르는 길이 있다고 말하지는 않았으리라. 사실 이 글에서는 선의 정신이 보이지는..

참살이의꿈 2020.08.26

다읽(1) - 선의 황금시대

책장에서 잠자고 있는 옛 책을 다시 읽기로 한다. '다읽'은 '다시 읽기'의 줄임말이다. 코로나가 가르쳐 준 것 중 하나가 가까이 있는 것의 소중함이다. 방안을 가득 채우던 많은 책을 버렸을 때, 차마 떠나보내기 아까운 일부 책은 남겨 두었다. 언젠가는 다시 한번 읽어야지, 했는데 그때가 지금인 것 같다. '다읽'의 첫 번째 책은 중국의 오경웅(吳經熊) 선생이 쓴 다. 선(禪)에 관한 안내서로 이만한 책이 없다고 생각한다. 딱딱한 이론서가 아니라 선승의 생애와 일화 중심으로 쉽고 재미있게 선의 핵심을 풀이했다. 지은이인 오경웅 선생은 가톨릭 신자인 것이 특이하다. 1899년 중국에서 태어나 법학을 공부하고 바티칸 교황청 공사로도 근무했다. 특정 종교에 얽매이지 않고 폭넓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런 책..

읽고본느낌 2020.08.04

구원으로서의 글쓰기

지은이인 나탈리 골드버그는 글쓰기와 명상을 결합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글을 쓰고,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들으며 마음공부에 활용한다. 그 과정에서 공감하고, 자신의 고민을 잊고, 안도감을 느낀다. 글쓰기를 통해 삶을 버텨낼 힘을 얻고, 경험한 것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되며, 자기가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이 책 는 단순한 글쓰기의 테크닉을 말하지 않는다. 글쓰기의 수행의 한 과정이고 치유의 수단이다. 지은이가 1주일에 걸쳐 진행하는 '삶과 언어 수련회'의 대부분이 '좌선, 걷기, 쓰기'에 할애되어 있다. 한 단어는 곧 한 걸음과 같다. 만 아니라 전작인 도 제목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만 지은이는 쉬운 글쓰기를 강조한다. 연습의 하나로 카페에서 30분간 주변 광경을 묘사하는 ..

읽고본느낌 2018.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