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8

모든 것은 빛난다

경쾌한 제목과 달리 묵직한 주제를 다루는 철학서다. 저명한 철학교수인 휴버트 드레이퍼스와 숀 도런스 켈이 공저자다. 부제가 '허무와 무기력의 시대, 서양 고전에서 삶의 의미 되찾기'로, 우리 삶이 다시 빛나기 위해서는 고전 시대의 지혜를 되살려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호메로스 시대의 그리스인들은 행복한 다신주의자들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오늘날에 만연한 허무주의와는 딴판이었다. 우리는 신을 쫓아냈지만 빈 자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성스러운 마법의 경험은 사라졌고, 세계의 경이로움으로부터도 멀어졌다. 생의 반짝이는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우리는 세계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한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나오는 '아레테(arete)'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삶의 '탁월성'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데 '감사..

읽고본느낌 2018.11.07

동물의 왕국

옆자리 동료는 수업을 마치고 나오면 아이들을 짐승에 비유하는 말을 자주 했다. 수업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그런 우스갯소리로 푼 것이다. 동료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알기에 아무도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오히려 동병상련으로 맞장구를 쳐주기도 했다. 그러나 좋은 말도 너무 자주 들으면 식상하는 법인데, 한번은 이렇게 대꾸해 준 적이 있었다. "세상이 동물로 우글거리니 아이들도 동물이 되는 거야." 아이들의 심성이 고약해져가는 걸 아이들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세상이 썩었는데 아이들이 순수하기를 바라는 건 말이 안 된다. 교육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정의 건강이 특히 중요하다. 가정이 병들면 아이의 마음도 병들게 된다. 교사라면 문제 학생 뒤에 문제 가정이 있다..

참살이의꿈 2014.08.24

세상이 무섭다

사람들은 고기 한 마리 던져준 데 눈이 팔려 정작 바다의 비극은 잊고 있다. 이제 새로운 화젯거리가 생겼으니 또 몇 달 우려먹을지 모르겠다. 정작 중요한 건 내팽개쳐두고 말이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별법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 국가 개조란 언감생심이다. 세월호 참사 100일째다. 그래도 이번에는, 하는 기대가 없지는 않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미 괴물이 된 것 같다. 거대한 톱니바퀴는 더 무서운 가속도를 내며 돌아가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들은 쾌재를 부를 것이다. 반면에 사람들은 보신과 이기주의의 고치 안으로 숨는다. 세상이 무섭다.

길위의단상 2014.07.24

시절이 하수상하니

어느 시대나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세상을 제일 난세로 믿는다고 한다. 맞는 말인 것 같다. 인간사가 원래 하루도 편할 날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온 수십 년을 돌아보아도 그렇다. 매 시기마다 힘들고 어려운 무엇이 있었고, "세상이 왜 이래?"라는 한탄이 안 나올 때가 없었다. 일체개고(一切皆苦)라는 속세의 삶이 갖는 숙명인 것이다. 그렇더라도 작금의 세상 돌아가는 상황은 '시절이 하수상하다'는 탄식을 절로 나오게 한다. 연초의 경주 리조트 화재가 세월호 참사로 이어지더니 최근에는 을지로 지하철 추돌, 고양터미널 화재, 도곡역 지하철 방화, 급기야는 요양원 화재로 스무 명 넘는 노인이 죽었다. 세상이 너무 어수선하고, 또 어디서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불안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너무 자주 터지니 이러..

길위의단상 2014.05.29

방귀 뀐 놈이 성낸다

세상은 요지경이라더니 방귀 뀐 놈이 오히려 성내는구나. 저 울그락불그락 화내는 꼴 좀 보소. 죄 없는 공중에 대고 삿대질을 하는구나.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이란 말인가. 제 평생 한 짓이 그러한 줄 알겠구나. 네놈의 들보는 못 보면서 남의 티를 책잡아 오두방정을 떠는구나. 네 이놈, 그러면 못쓰느니라. 놀부를 닮아서 너도 오장칠부더냐. 아무리 제 발이 저려도 그렇지 참 꼴불견이라, 생트집 잡는 네 꼬락서니를 보거라. 그런다고 네 허물이 덮어질 줄 아느냐.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한 줄 아느냐. 아서라, 이젠 나잇값을 할 만도 하렷다.

길위의단상 2014.04.22

이상한 세상

서울에 갔다가 고층에 살고 있는 지인의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로 내려가던 참이었다. 6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멎고 문이 열렸는데도 한 여자 어린이가 들어오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이었다. 얼굴은 잔뜩 찡그러져 있었다. 처음에는 왜 타지 않는지 영문을 몰랐다.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현관문을 열고 얼굴만 내민 채 "괜찮아, 타도 돼." 라고 말했다. 그제야 상황이 이해되었다. 엘리베이터 안에 남자가 있으니 무서워서 못 탄 것이었다. 나도 웃으며 "할아버지니까 괜찮아, 타."라고 말했다. 아이는 마지못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몇 학년이냐고 물으니 초등학교 2학년이라고 했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아이는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사람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세상이지만 막상 이런 상황을 만나니 ..

참살이의꿈 2014.01.19

나는 세상을 너무 사랑할까 두렵다 / 이기철

나팔꽃 새 움이 모자처럼 볼록하게 흙을 들어 올리는 걸 보면 나는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질까 두렵다 어미 새가 벌레를 물고 와 새끼 새의 입에 넣어주는 걸 보면 나는 세상이 너무 따뜻해질까 두렵다 몸에 난 상처가 아물면 나는 세상을 너무 사랑할까 두렵다 저 추운 가지에 매달려 겨울 넘긴 까치집을 보면 나는 이 세상을 너무 사랑할까 두렵다 이 도시의 남쪽으로 강물이 흐르고 강둑엔 벼룩나물 새 잎이 돋고 동쪽엔 살구꽃이 피고 서쪽엔 초등학교 새 건물이 들어서고 북쪽엔 공장이 지어지는 것을 보면 나는 이 세상을 너무 사랑할까 두렵다 서문시장 화재에 아직 덜 타고 남은 포목을 안고 나오는 상인의 급한 얼굴을 보면 찔레꽃 같이 얼굴 하얀 이학년이 가방을 메고 교문을 들어가는 걸 보면 눈 오는 날 공원의 벤치에 석상..

시읽는기쁨 2011.03.11

Delete!

컴퓨터에는 [Delete] 키가 있어서 원하는 것을 지울 수가 있다. 그런데 세상 일에도 작동되는 [Delete] 키는 없을까? 이 세상을 프로그래밍한 절대 존재의 손에는 이 키가 들려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술봉 같은이 키를 잠시나마 빌릴 수 있다면..... 돈만이 최고라고 외쳐대는 물신(物神)의 우상숭배를 Delete! 개발과 성장에 중독된 자본주의의 탐욕을 Delete! 자본의 부스러기에 기생하는 사이비 설교자들을 Delete!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와 어리석음을 Delete! 차떼기로 주고 받으면서도 뻔뻔하기만 한 저 도적놈들의 소굴을 Delete! 권력에 아부하느라 꼬리치기 바쁜 똥강아지들을 Delete! 이리저리 눈치 보느라 눈만 반들반들해진 영악한 쥐새끼들을 Delete! 돈이 되는 ..

사진속일상 2004.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