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동 3

혜화경찰서에서 / 송경동

영장 기각되고 재조사 받으려 가니2008년 5월부터 2009년 3월까지핸드폰 통화내역을 모두 뽑아왔다난 단지 야간 일반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잡혀왔을 뿐인데힐금 보니 통화시간과 장소까지 친절하게 나와 있다청계천 탐엔탐스 부근.... 다음엔 문자메씨지 내용을 가져온다고 한다함께 잡힌 촛불시민은 가택수사 했고통장 압수수색도 했단다 그리곤의자를 뱅글뱅글 돌리며웃는 낯으로 알아서 불어라 한다무엇을, 나는 불까 풍선이나 불었으면 좋겠다풀피리나 불었으면 좋겠다하품이나 늘어지게 불었으면 좋겠다트럼펫이나 아코디온도 좋겠지일년치 통화기록 정도로내 머리를 재단해보겠다고몇년치 이메일 기록 정도로나를 평가해보겠다고너무하다고 했다 내 과거를 캐려면최소한 저 사막 모래산맥에 새겨진 호모싸피엔스의유전자 정보 정도는 검색해와야지저 바닷..

시읽는기쁨 2011.12.16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 송경동

스물여덟 어느 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 하지 않겠냐고 찾아왔다 얘기 말엽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 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요?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유리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 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 하지 않았다 십수 년이 지나 요 근래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내게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닷물결에 밀리고 있으며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

시읽는기쁨 2011.03.23

너는 누구에게 물어보았니 / 송경동

너는 물어보았니 그 강변 땅 위의 별인 조약돌들에게 골재가 되고 싶으냐, 라고 물어보았니 달빛 고운 여울목에서 맑은 돌눈이 되어 누군가를 기다리며 살고 싶니, 아니면 흙탕물 속에 수장된 병든 자갈눈이 되고 싶니, 라고 강변에서 볕에 마르는 탄탄한 몸이 되고 싶은지 물이끼 촉촉이 서린 서늘한 몸이 되고 싶은지 너는 물어보았니 그 강물 속 물고기들에게 버들치에게 꺾쇠에게 피리에게 물어보았니 흐르는 물살을 따라 어디까지 가고 싶은 여행이었는지 물어보았니 우웅우웅 하루에도 몇 번씩 스크루 갈퀴가 캐터필러처럼 불도저처럼 삽날처럼 강바닥을 헤집는 탁류 속에서 살고 싶은지, 상수원 맑은 물 속 조용한 빛화살촉들로 살고 싶은지 물어보았니 갑문 앞에서 줄지어 섰다 우르르 내쫓겨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난민들의 피난 행렬이..

시읽는기쁨 2010.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