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8

그렇게 소중했던가 / 이성복

버스가 지리산 휴게소에서 십 분간 쉴 때, 흘러간 뽕짝 들으며 가판대 도색 잡지나 뒤적이다가, 자판기 커피 뽑아 한 모금 마시는데 버스가 떠나고 있었다. 종이컵 커피가 출렁거려 불에 데인 듯 뜨거워도, 한사코 버스를 세워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가쁜 숨 몰아쉬며 자리에 앉으니, 회청색 여름 양복은 온통 커피 얼룩, 화끈거리는 손등 손바닥으로 쓸며, 바닥에 남은 커피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렇게 소중했던가, 그냥 두고 올 생각 왜 못했던가. 꿈 깨기 전에는 꿈이 삶이고, 삶 깨기 전에는 삶은 꿈이다. - 그렇게 소중했던가 / 이성복 커다란 박에 구멍을 뚫고 안에는 원숭이가 좋아하는 먹이를 넣는다. 손을 박 안으로 집어넣은 욕심 많은 원숭이는 먹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주먹을 펴지 않으니 박에서 손을 빼낼 수..

시읽는기쁨 2022.05.11

욕심 속에서 욕심 없이

옛 노트를 열어보니 어느 날의 일기에 아무런 설명 없이 '在欲無欲'이라는 한자가 적혀 있다. 그 네 글자가 내 시선을 오래 붙잡는다. 해석하면 '욕심 속에서 욕심 없이 산다'는 뜻이겠다. 어디서 보고 노트에 옮겨 적은 것일까. 인터넷에서 출처를 찾아보니 '휴휴암주좌선문(休休庵主坐禪文)'이다. 옛날 중국에 있던 휴휴암이라는 절의 주지 스님이 쓴 글로 '在欲無欲'이 나오는 부분은 이렇다. 在欲無欲 居塵離塵 謂之禪 욕심의 세계에 있으나 욕심이 없으며 티끌 세상에 살면서도 번뇌에 빠지지 않는 것이 선(禪)이다. 재욕무욕 거진이진(在欲無欲 居塵離塵) - 욕심의 세계에 있으나 욕심이 없고, 티끌 세상에 살면서 티끌에 오염되지 않는다. 밥을 먹되 밥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고, 돈을 아끼되 돈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

참살이의꿈 2022.02.03

부동산 약탈 국가

읽는 동안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체한 듯 가슴이 답답하고 화도 났다. 자극적인 책 제목대로 이 책의 지은이인 강준만 선생은 부동산 가격 폭등을 '합법적 약탈'이라고 규정한다. 집 없는 사람 처지에서는 폭력으로 빼앗아가는 약탈보다 더 악랄한 약탈이다. 부제가 '아파트는 어떻게 피도 눈물도 없는 괴물이 되었는가?' '우리는 언제까지 정부의 '부동산 사기극'에 당하고만 살 건가?'다. 집을 가진 사람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약탈이 '코리안 드림'이 된 나라에서 서울 강남에 아파트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이미 계급 분리가 되어 있다. 이 책에서 자주 인용하는 19세기 미국 경제학자 헨리 조지는 말했다. "우리 현 사회체제 속에 내재한 낭비 중에서도 가장 엄청난 낭비는 바로 정신적 능력의 낭비다." 불..

읽고본느낌 2020.12.30

아귀들 / 정현종

계곡마다 식당이 들어차고 물가마다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이 나라 산천 가는 데마다 식당이요 카페요 레스토랑뿐이다. 굶어 죽은 귀신들이 환생을 해서 저렇게 됐을 것이다. 또 다른 아귀들은 몰려들어 아귀아귀 먹는다. (다 아는 얘기지만 대학가도 도시의 골목도 식당과 술집으로 미어진다!) 한 아귀인 나는 토종닭을 시켜 먹으며 이 천박한 나라를 개탄하고 개탄한다. 이 나라 이 국민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이 땅의 계곡들아 대답해다오. 바다야 강물들아 대답해다오. 아귀들 대답해다오. - 아귀들 / 정현종 "진지 드셨니껴?" 어릴 때 동네 골목에서 어르신을 만나면 의레 하던 인사말이었다. 제 때 끼니를 차려 먹기 어렵던 시절의 안타까움이 배어 있던 말이다. 아마 우리 나이대가 보릿고개를 경험한 마지막 세대일 것..

시읽는기쁨 2020.01.23

노욕은 추하다

인간이 제 몫을 챙기고 재산을 소유하게 된 건 신석기시대에 들어서며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수렵채취시대에는 모아둘 물량이 적었을뿐더러 이동 생활에서 보관이란 생각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인간의 탐욕도 농사와 함께 따라왔다고 할 수 있다. 그 뒤부터는 서로 많이 가지려고 싸움박질이 시작되었다. 사탕이 있으면 아이들도 다툰다. 그러나 아이들의 욕심에는 한계가 있다. 한두 개면 만족하지 수십 개의 사탕을 혼자 독점하려고는 안 한다. 많이 가지고 있다면 다른 아이에게 나누어줄 줄 안다. 동물도 제가 배부르면 더 이상 먹이를 탐하지 않는다. 사자가 수십 마리의 얼룩말을 사냥해서 제 창고에 보관한다는 소리는 못 들었다. 젊은이의 욕망도 현실적인 이득이 아닌 미래의 꿈과 관련되어 있다. 젊은이의 야망은..

참살이의꿈 2018.04.30

장자[206]

고르게 나누면 복이 되고 남아돌면 해가 되는 것은 만물이 그렇지 않은 것이 없지만 재물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지금 부자가 귀는 좋은 음악을 듣고 입은 주지육림에 진력이 나고 사념에 감동하고 학업을 잊어버린다면 어지럽다 할 것이다. 날뛰는 기운대로 목구멍에 차도록 탐닉한다면 무거운 짐을 지고 산에 오르는 것과 같으리니 가히 고통스러운 일이라 할 것이다. 재물을 탐하여 우울증을 얻고 권력을 탐하여 갈증을 얻으며 거처가 편안하니 색을 탐닉하고 몸이 윤택할수록 속은 텅 빈 집이 된다면 가히 괴로운 일이라 할 것이다. 부자가 되려고 이(利)를 좇기만 한다면 가득 차서 담장에 갇힐 것이며 피할 줄 모르고 또 달리기를 그칠 줄 모른다면 가히 욕된 일이라 할 것이다. 재물이 쌓여 쓸데없는 것을 가슴에 품고 버리지 못..

삶의나침반 2012.05.11

나의 가난함 / 천상병

나는 볼품없이 가난하지만 인간의 삶에는 부족하지 않다 내 형제들 셋은 부산에서 잘 살지만 형제들 신세는 딱 질색이다 각 문학사에서 날 돌봐주고 몇몇 문인들이 날 도와주고 그러니 나는 불편함을 모른다 다만 하늘에 감사할 뿐이다 이렇게 가난해도 나는 가장 행복을 맛본다 돈과 행복은 상관없다 부자는 바늘귀를 통과해야 한다 - 나의 가난함 / 천상병 올 설날도 가장 자주 들었던 덕담이 "돈 많이 벌어라" "부자 되어라"는 것이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과 같이 어렵다고 했는데, 사람들은 서로 하늘나라에 가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도 좋아하니 참 묘한 일이다. 하루치의 막걸리와 담배만 있다면 행복하다고 말했던 시인 천상병,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높이 중에서 가난을..

시읽는기쁨 2008.02.10

원하지 않으면 부족하지 않다

연말이 될 수록 삶이 공허하고 허전하게 느껴지는 것은 채워지지 않은 바람이나 기대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해 동안 애쓰고 노력한 만큼 이루어지지 못하고 채워지지 않으니 불만족이 생기고 사는 게 힘들게 느껴지는 거지요. 거기에는 늘 욕심이라는 마음이 관계되어 있습니다. 욕(慾)은 생명체가 생존 번식하기 위하여 하늘이 주신 것이지만, 인간의 경우는 지능과 더불어 욕망이 고도로 진화 발전하여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욕망의 포로가 되어 버렸습니다. 동물의 기본적인 생존 욕망은 결코 그들을 불행으로 이끌지는 않습니다. 동물 욕망은 단순하고 자기 한계를 갖고 있어 자연 생태계와 조화를 이룹니다. 그에 비해 인간의 욕망은 쉼 없이 팽창하며 지배와 정복을 통해 욕망을 달성하려 합니다. 그 끝없는 자기 증식은 암..

참살이의꿈 2006.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