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부동산 약탈 국가

샌. 2020. 12. 30. 12:13

읽는 동안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체한 듯 가슴이 답답하고 화도 났다. 자극적인 책 제목대로 이 책의 지은이인 강준만 선생은 부동산 가격 폭등을 '합법적 약탈'이라고 규정한다. 집 없는 사람 처지에서는 폭력으로 빼앗아가는 약탈보다 더 악랄한 약탈이다. 부제가 '아파트는 어떻게 피도 눈물도 없는 괴물이 되었는가?' '우리는 언제까지 정부의 '부동산 사기극'에 당하고만 살 건가?'다.

 

집을 가진 사람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약탈이 '코리안 드림'이 된 나라에서 서울 강남에 아파트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이미 계급 분리가 되어 있다. 이 책에서 자주 인용하는 19세기 미국 경제학자 헨리 조지는 말했다. "우리 현 사회체제 속에 내재한 낭비 중에서도 가장 엄청난 낭비는 바로 정신적 능력의 낭비다." 불평등의 고착과 확대로 인해 진보에 쓰여야 할 인간의 정신력이 인간 타락으로 인한 사치와 허영에 온통 소모되어 버리는 사회 풍조을 비판한 말이다. 이는 지금 우리의 부동산 문제에도 똑 같이 적용할 수 있다. 일부 특정 지역 주민을 제외하고 국민 대다수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절망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서민을 위한다는 자칭 진보 정권에서 부동산 폭등 현상은 반복되고 있다. 노무현 때 그렇게 당했으면서 무능한 문재인 정권은 데자뷔처럼 과오를 되풀이한다. 노무현은 처음에는 분양원가 공개나 후분양제를 추진하다가 결국 두 손을 들고 항복했다. 나중에 노무현은 다수 국민의 생존권이 걸린 주택 문제를 "10배 남는 장사도 있다"라는 논리로 합리화하는 발언을 해서 민심 이반을 재촉했다. 문재인의 언행도 노무현을 어쩌면 그렇게 닮아가는지 모르겠다. 무능한 건지 아니면 국민 사기를 벌이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정권 유지 차원이었는지는 몰라도 토지공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건 오히려 노태우 정권이었다. 역대 정부에서 가장 진보적인 경제 정책을 추진한 지도자는 노 대통령이었다. 노무현이 아닌 노태우인 것이다. 1990년에 '택지소유상한제' '토지초과이득세제' '개발이익환수제'가 시행되었으나 이마저도 용두사미로 끝났다. 어느 경제학자의 말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부동산 문제 해결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대한민국의 기득권층이 누구던가. 조선 사대부터 시작해 꼼수의 천재들 아니던가. 경제 민주화의 포돌이라 생각했던 토지공개념이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그저 귀여운 새끼 고양이에 불과했다. 그나마 이런 제도마저 이후 반대 세력들에 의해 차례차례 무력화된다." 아마 문재인 정권이 내놓는 온갖 표피적인 부동산 정책도 기득권층에서는 귀여운 새끼 고양이의 울음소리 정도로 듣고 있을지 모른다.

 

<부동산 약탈 국가>는 경제학자의 저서, 신문 칼럼, 통계, 보고서 등 다양한 자료를 이용해 대한민국의 부동산 현실 문제를 짚어낸다. 우리는 이미 부동산 계급 사회에 들어간 느낌이다. 아이들마저 나는 왕족, 너는 노비라는 식으로 차별이 일상화되었다. 제어되지 않는 인간의 탐욕은 대한민국을 막장 사회로 몰아간다. 아파트로 부자가 된 사람이라고 마음이 편할 리가 있을까. 세상이 정글로 변하는 건 우리 모두의 비극이다.

 

책은 부동산 문제의 해결 방안에 대해서는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부동산은 교육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지적한다. 부동산 약탈의 근본 원인은 '서울 집중'이고, 이는 명문 대학의 서울 집중과 맥을 같이 한다. 따라서 교육 개혁 없이는 대한민국에 주기적으로 불어닥치는 부동산 광기를 잠재울 수 없다. 하지만 문재인은 검찰 개혁에 진을 다 빼버린 채 교육 개혁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 못 하고 있다. 기본에서 삐걱거리니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부채질을 하는 꼴이다. 어느 정권에 이 문제의 해결을 맡길 수 있단 말인가.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책 뒤표지에 적힌 지은이의 말이다.

 

"부동산 불로소득이 예외가 아니라 주요 사회적 흐름으로 구조화되어 있다면 그것은 약탈이다. 합법적 약탈은 시스템의 문제다. 그 시스템의 관리 책임자인 정부가 약탈의 주범일 수도 있겠지만, 정부를 처벌할 수 있는 상한선은 무능하다는 비판뿐이다. 그런데 무능해질 대로 무능해진 정부는 스스로 사망선고를 내리지는 못할망정 무슨 권능이나 있는 것처럼 폼만 잡고 위선이나 떨어대는 걸까? 도대체 역대 정권들은 무슨 심보로 '부동산 투기 근절' 운운하는 엉터리 잡소리들을 남발해왔는가?

한국은 진보-보수 정권이 번갈아가면서 발전시켜온 약탈 체제다. 한국의 정치판과 고위공직은 약탈 체제의 수혜자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약탈의 피해자들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없다. 고위층이나 고위 관료들은 약탈의 수혜자들 중에서도 알찬 수혜자들이 아니던가? 언제까지 서민들의 삶을 짓밟고 내 집 마련의 꿈을 빼앗을 것인가?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분노와 저항뿐이다. 부동산 약탈 체제를 방치하거나 강화하면서 외치는 개혁에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부동산 약탈 국가'의 파렴치한 사기극을 끝장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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