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로마

샌. 2021. 1. 4. 11:26

 

담백한 흑백 화면에 클레오의 삶을 잔잔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배경은 1970년대 초반 멕시코다. '로마'는 이탈리아의 로마가 아니라 멕시코시티에 있는 어느 지역명이다.

 

클레오는 원주민으로 멕시코 상류 가정에서 일하는 가정부다. 넓은 집의 살림을 하고 네 아이 치다꺼리 하느라 종일 일에 파묻혀 산다. 이 영화는 두 계급 사이의 가까워질 수 없는 간극을 냉정하면서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넓게는 인간의 외로움이나 소통의 문제를 다룬다고 볼 수도 있겠다. 부자와 빈자, 서양인과 원주민, 남과 여 등의 대비를 통해 인간 삶의 근원적인 문제를 흑백 화면으로 보여준다. 인간은 어느 정도까지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한때 '계급'이라는 단어가 금기어가 된 때가 있었다. 씁쓰레한 에피소드가 있다. 1980년대였던가, <History & Class Consciousness>라는 외국책을 번역하면서 '역사와 학급 의식'으로 제목을 달았다. 'Class'를 '계급'으로 쓸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도 '계급'이라는 말에 알레르기를 가지는 층이 있다. 내 눈에는 이 영화도 계급 의식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거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클레오는 바다에서 물에 빠진 주인집 아이를 구해 준다. 포스터에 들어간 장면이 바로 그때의 모습이다.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보다 클레오가 오히려 가족의 중심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클레오에게 잘해주는 선한 사람들이지만, 둘을 나누는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차창 밖을 내다보는 클레오의 표정이 너무나 안쓰럽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클레오는 계단을 올라간다. 하늘이 넓은 부분을 차지하고 어디론가 날아가는 비행기도 보인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는 청소하는 바닥을 오래 보여줬다. 클레오의 밝은 미래를 암시하는 것일까. 클레오의 착한 심성과 함께 오래 기억에 남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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