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문도선행록

샌. 2021. 1. 8. 12:18

김미루 작가의 치열한 예술혼과 도전 정신을 존경한다. 예술이란 무엇일까? 예술이란 "사람되기를 배우기(Learning to be human)"라는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다. 작가의 작업 과정을 보면 인간의 길을 물으며 정진하는 수도자의 모습이 연상된다. <문도선행록(問道禪行錄)>이라는 책 제목 그대로다.

 

이 책은 2012년부터 3년 동안 사하라 사막, 아라비아 사막, 타르 사막, 고비 사막을 헤매며 문명이 내팽개친 정신을 찾아 나선 고독한 모험의 발자취를 그리고 있다. 자신의 누드로 이미지를 전달하는 작가는 여기서는 사막의 낙타를 통해 자연과의 교감 및 상생의 길을 보여준다. 도시의 버려진 풍경이나 돼지, 애벌레를 소재로 한 작품과는 달리 낙타 시리즈에서는 인간의 손에 때 묻지 않은 원초의 순수한 아름다움이 펼쳐진다. 마치 에덴동산을 보는 것 같다.

 

작가는 사진 작업을 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사막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민족들의 삶을 소개한다. 작가는 여행자나 관찰자가 아니라 그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며 동화한다. 문명인으로서는 감내하기 힘든 조건도 마다하지 않는다. 3년의 사막 여정은 작가를 한 단계 더 성숙한 상태로 이끌지 않았나 싶다. 무엇이건 공짜로 주어지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인도의 카르니 마타 사원에서의 행위예술이다. '카르니 마타'는 인도의 쥐의 여신 이름으로 이 사원은 쥐를 숭배하는 쥐들의 천국이다. 신자들은 쥐가 자신들의 조상이라 믿고 공경한다. 작가는 도시 작업을 할 때부터 쥐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카르니 마타 사원에서 쥐와 함께 퍼포먼스를 한다. 쥐와 우유를 같이 마시고, 쥐가 온몸을 타고 돌아다니게 한다. 그 과정에서 쥐에게 물리기도 한다. 사원의 관계자들조차 깜짝 놀란다. 행위예술인 줄 모르는 일반인들이 그녀를 살아있는 여신이라며 절하고 경배하는 에피소드도 생긴다. 몸이 아픈 사람은 그녀를 만지면 나을 것이라는 믿음도 생길 것이다. 작가는 이 과정을 통해 맹신의 구조에 대해 통찰을 얻는다.

 

사막에 반한 작가가 제일 오래 머문 곳은 요르단의 와디 럼 사막이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무대가 되었던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 자기만의 터를 꾸미고 단독 생활 실험을 한다. 그녀의 여정 중 가장 낭만적인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작가의 도전과 용기가 부럽기만 하다.

 

<문도선행록>은 6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쉽게 술술 읽힌다. 그만큼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그녀는 사진을 통해 우리가 못 보는 것을 보여주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더욱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김미루 작가는 도올 김용옥 선생의 따님이다. 아버지의 권유로 미국에서 의학을 전공했으나 결국 자신의 소질과 희망을 따라 서양화를 공부하고 사진작가와 행위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인 것 같다. 근래에는 정글에 들어가서 또 다른 실험을 하고 있다.

 

김미루 작가의 홈페이지에서 작품 몇 점을 옮긴다.

 

 

▽ 낙타의 길

 

▽ 돼지가 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애벌레 먹는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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