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말 미국의 대기업 엔론이 '등수 매겨 내쫓기'라는 모델을 도입했다. 직원의 성과를 경쟁의 잣대로 평가하여 상위 20%에게 보너스를 몽땅 몰아주고 하위 10%는 해고했다.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에서 능력에 따라 인간을 평가하는 '20/70/10 규칙'이 적용되는 사회를 '엔론 사회'라고 부른다. 이런 실적주의는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고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 책의 문장에서는 '빚으로 산 우울한 향락의 사회' '역사상 가장 잘 살지만 가장 기분이 나쁜 사람들' '우리의 가장 나쁜 측면을 장려하는 사회' 등으로 표현한다.
벨기에의 정신분석학자인 파울 페르하에허가 쓴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는 신자유주의 가치의 지배를 받는 현대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전반부에서는 인간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길게 설명한다. 정체성은 환경의 산물이며, 경쟁과 능력을 우선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물든 현대인은 그런 정체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는 소수의 승자 만족과 다수의 루저가 안게 되는 심리적 문제(좌절, 시기심, 두려움)를 야기한다. 사회 전체적으로 나쁜 결과가 초래될 것은 뻔하다. 중산층이 자취를 감추고 다수의 하류층을 디딤판으로 삼아 소수의 상류층만 혜택을 누린다. 사회관계는 날로 공격적으로 변한다. "세상이 왜 이래"라는 한탄의 근저에는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이 도사리고 있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교직에 있을 때가 생각난다. 2천 년대에 들어서서 학교에도 기업을 본떠 성과급이 도입됐다. 교사를 등급으로 나누고 보너스를 차등 지급하는 정책이었다.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를 어떤 방법으로 계량화 할 수 있는지 아무 준비도 안 된 채였다. 교사를 경쟁시키겠다는 의도였는지는 몰라도, 학교 현장 분위기는 엉망이 됐다. 엔론 모델이 얼마나 극성을 부렸는지 알 수 있다. 학교가 이럴진대 기업은 어떨지 생각하면 끔찍하다.
신자유주의는 사회 전 분야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 책에서는 '지식 공장이 된 대학'과 '건강 기업이 된 병원'을 예로 든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대학은 대기업의 싸구려 연구 기관으로 전락하든지, 인풋(학생)과 아웃풋(직장인)이 시장에 좌우되는 상장기업으로 구조 개혁될 것이라고 지은이는 어두운 전망을 한다. 병원도 다르지 않다. 병원의 제일 목표는 이윤이고 고객의 확보다. 이미 과다진료는 상식이 되었다. 매스컴은 사람들에게 병이 들었다고, 병이 들 거라고, 그러니 대처를 해야 한다고 선전한다. 언론과 결탁한 의료 산업의 전략이다. 광고와 언론의 메시지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세대의 정체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에게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극복해야 할 과제가 주어졌다. 그런데 대안은 무엇인가? 세상의 흐름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냉소주의를 버리고 깨어 있는 시민끼리 연대하기? 새로운 경제 체제와 사회 질서는 어떤 모양일까? 지은이의 말이다.
"포스트모던 시대 인간은 이상한 분열에 시달린다. 새로운 형태의 인격 분열이다. 우리는 체제를 비판하고 체제에 적대적이면서도 변화를 꾀할 만큼의 힘은 없다고 느낀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이 체제를 강화하고 확장하는 생활방식을 고수한다. 우리가 먹고 마시며 입고 이동하고 여행하는 방법이 다 여기에 포함된다. 우리는 우리가 비난하는 그 체제의 일부이다. 저항한다고 우익이나 좌익 정당에 투표를 하는 것으로는 변하지 않는다. 타인들만 변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우리 자신도 변해야 한다. 소비만 할 것이 아니라 다시 국민의 권리를 고민해야 한다. 선거만 할 것이 아니라 생활방식도, 아니 무엇보다 생활방식을 먼저 바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