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렇게도 불경스런 잡념들을 싹싹 핥아서 깨끗이 비워놨을까요 볕 좋은 절집 뜨락에 가부좌 튼 개밥그릇 하나 고요히 반짝입니다 단단하게 박힌 금강(金剛) 말뚝에 묶여 무심히 먼 산을 바라보다가 어슬렁 일어나 앞발로 굴리고 밟고 으르렁그르렁 물어뜯다가 끌어안고 뒹굴다 찌그러진 어느 경지에 이르면 저렇게 마음대로 제 밥그릇을 가지고 놀 수 있을까요 테두리에 잘근잘근 씹어 외운 이빨 경전이 시리게 촘촘히 박혀 있는, 그 경전 꼼꼼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 대목에선가 할 일 없으면 가서 '밥그릇이나 씻어라' 그러는 - 밥그릇 경전 / 이덕규 한 학승이 조주(趙州, 778~897) 선사를 찾아왔다. "저는 공부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큰스님께서 잘 지도해 주십시요." 이에 선사는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