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혜 2

손금 보는 밤 / 이영혜

타고난다는 왼 손금과 살면서 바뀐다는 오른 손금을 한 갑자 돌아온다는 그가 오르내린다. 그렇다면 양손에 예언서와 자서전 한 권씩 쥐고 사는 것인데 나는 펼쳐진 책도 읽지 못하는 청맹과니. 상형문자 해독하는 고고학자 같기도 하고 예언서 풀어가는 제사장 같기도 한 그가 내 손에 쥐고 있는 패를 돋보기 내려 끼고 대신 읽어준다. 나는 두 장의 손금으로 발가벗겨진다. 대나무처럼 치켜 올라간 운명선 두 줄과 멀리 휘돌아 내린 생명선. 잔금 많은 손바닥 어디쯤 맨발로 헤매던 안개 낀 진창길과 호랑가시나무 뒤엉켰던 시간 새겨져 있을까. 잠시 동행했던 그리운 발자국 풍화된 비문처럼 아직 남아 있을까. 사람 인(人)자 둘, 깊이 새겨진 오른손과 내 천(川)자 흐르는 왼손 마주 대본다. 사람과 사람, 물줄기가 내 생의 요..

시읽는기쁨 2018.09.04

찾습니다 / 이영혜

부풀린 어깨에 가끔씩 포효 소리 제법 크지만, 낮잠과 하품으로 하루를 때우는, 허세의 갈기 무성한 수사자 말고 해만 넘어가면 약한 먹잇감 찾아 눈에 쌍심지 돋우는, 뱃속까지 시커면, 욕망의 윤기 잘잘 흐르는 음흉한 늑대 말고 훔친 것도 좋아, 높은 놈 먹다 버린 것도 좋아, 패거리로 몰려다니길 즐겨 하는, 웃음도 비열한 하이에나 말고 수천 권 뜯어먹은 지성인 척 턱수염 도도하게 으스대지만, 강자 앞에선 아첨의 목소리로 선한 초식동물인 척하는, 이중인격 비굴한 염소도 말고 아무데서나 혀 빼고 군침 흘려 대며, 할 소리 안 할 소리 쓸데없이 짖어 대거나 아무나 물어뜯는, 날카로운 야성의 송곳니는 유전자에서 사라져 버린 지 오래인, 잡개는 더욱 말고 높은 하늘 향해 한 자세로 한 몸 꼿꼿이 세운 한 향기 한 ..

시읽는기쁨 2018.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