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악 2

오랑캐꽃 / 이용악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 건너로 쫓겨 갔단다고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 골짝을 구름이 흘러백 년이 몇 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도 받지 않았건만오랑캐꽃너는 돌가마도 털미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두 팔로 햇빛을 막아 줄게울어 보렴 목 놓아 울어 보렴 오랑캐꽃 - 오랑캐꽃 / 이용악 오랑캐꽃은 제비꽃을 가리킨다. 옛날에는 제비꽃보다 오랑캐꽃으로 많이 불렀다. 오랑캐와는 아무 관련이 없지만 이름이 그리 되니 괜히 밉상 취급을 받는다. 우리가 오랑캐라 불렀던 여진족도 마찬가지다. 내 이해와 어긋나니 오랑캐라 불릴 뿐 핍박을 받도록 태어난 건 아니다. 중국이 우리를 동이(東夷)라 부르며 오랑캐 취급을 ..

시읽는기쁨 2016.03.28

그리움 / 이용악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白茂線)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워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 그리움 / 이용악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하얀 설원을 기차가 달리는 영화 '닥터 지바고'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것은 '백무선'(白茂線)이라는 이국적인 철길 이름에다 함박눈 속을 느릿느릿 달리는 화물차의 영상이 낭만적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시인의 그리움은 간절하긴 하지만 구차하진 않다. 비록 한밤중에 잠이 깨어 잠 못 들지만 고향에 내리는 함박눈을 연..

시읽는기쁨 2010.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