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 6

장맛비 속 고향에 다녀오다

올 장마는 성질이 사납다. 마치 인간에 대해 화풀이를 하려는 것 같다. 고향 동네에도 산사태가 나서 여러 군데 피해를 입고 있다. 하늘이 하는 일을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더구나 현대의 자연재해는 인과응보적 경향이 크다. 자연 훼손과 무분별한 삶에 대한 셈값을 반드시 치러야 할 것이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고향에 있는 나흘 동안 내내 비가 내렸다. 지금 장마전선은 충청도와 경상도 지역에 머물며 강한 비를 뿌리고 있다. 며칠째 꼼짝을 안 하고 있어 애를 태운다. 고향 마을도 집중호우대에 들어가 있다. 한 주 전에는 고향에 하룻밤새 200mm의 폭우가 퍼부었다. 여러 군데 산사태가 생겼고, 우리 산소도 허물어졌다. 마침 내려가 있던 여동생이 임시 땜질을 했다. 장마가 그쳐야 제대로 보수를 할 수 있을 것..

사진속일상 2023.07.15

제비가 돌아온 날

어머니를 뵈러 고향에 다녀왔다. 내려가는 길에 단양 사인암에 들렀다가 고속도로 대신 국도를 타고 죽령을 넘었다. 봄 색깔로 물든 산야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서였다. 군데군데 차를 멈추었다. 우리 지방에서는 벚꽃이 이미 졌는데 남쪽으로 갈수록 벚꽃이 일부 남아 있어 신기했다. 올해 날씨는 꽃이 피는 순서도 그렇고 뭔가 뒤죽박죽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며칠 더 일찍 왔다면 어머니와 벚꽃 나들이도 가능했을 것 같았다. 다음 날은 어머니와 밭에 나가 고사리를 꺾고 산소를 정리했다. 작년 같았으면 밭 전체에 농사 지을 준비가 되어 있었을 터인데 올해는 힘이 부치시다면서 일부만 손을 보셨다. "딴 소리 말거라, 일 하고 싶어도 못 할 때가 온다"라고 늘상 말씀하셨는데 이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산소에 난 잡초를..

사진속일상 2023.04.13

고향에서 3박4일

어머니를 뵈러 고향에 가서 나흘을 머물렀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내려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장마철이라 하늘은 잔뜩 흐렸다. 단양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나 죽령을 지나는 국도를 오랜만에 탔다.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죽령터널이 뚫린 뒤로는 거의 다닐 일이 없는 죽령길이었다. 이렇게 우회하는 것은 마음을 달래고자 해서였다. 죽령을 넘어서 희방폭포에도 들렀다. 희방계곡은 어릴 적 가족의 여름 피서지였다. 다섯 남매에게는 부모님과 함께 하는 일 년에 한 번뿐인 소풍날이었다. 50여 년이 지나 그 자리에 서니 이런저런 상념이 찾아와 어지러웠다. 어머니의 들깨 심는 일을 도우러 내려왔지만 일은 이미 끝나 있었다. 어머니는 부지런하기로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하실 분이다. 아흔둘 연세에 집에서 멀리 떨어진 이 ..

사진속일상 2022.07.16

제비

제비는 참 특이한 새다. 대부분이 사람을 두려워하고 도망가는데 제비는 사람 집을 찾아와서 둥지를 짓는다. 사람과 한가족이나 다름 없다. 사람이 지은 농작물은 건드리지 않고 오히려 해충을 잡아먹으니 여러 모로 이로운 새라 할 수 있다. 날렵한 생김새며 지지배배 소리도 호감이 간다. 아마 지저귀는 소리에서 제비라는 말도 생겨났을 것이다. 제비만큼 사람과 가까운 새도 없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봄에서 여름까지는 항상 제비와 함께 살았다. 추녀에 제비가 집을 짓기 시작하면 아버지는 그 밑에다 널빤지를 달아주었다. 제비 똥이나 불순물이 밑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는데 문 바로 위에 제비 둥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널빤지는 제비 새끼가 아래로 떨어지는 걸 막아주는 역할도 했다. 서로 말은 못해도 제비는..

사진속일상 2014.07.26

제비 / 최종진

집으로 들어오는 전깃줄 하나 날갯죽지 맞대고 촘촘히 앉아 도무지 알아듣지 못할 소리로 이른 아침부터 시부렁거렸지 저새끼좆나게늦잠자네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니기미씨팔니기미씨팔 하는 것 같기도 해서 야야, 오늘은 일요일이야 늦잠 좀 자면 안되겠나 사정도 해쌌는데 그 사이 세월이 얼마나 흘렀다고 흐릿한 눈 비비고 보고 닦고 봐도 텅 빈 전깃줄엔 눈물만 그렁그렁 달려 있어 니 어디 갔노, 안 보이네 어이, 씨팔 제발 다시 돌아와 그때처럼 니기미씨팔니기미씨팔 욕 한번 신나게 해주면 안 되겠나 - 제비 / 최종진 그 많던 제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시절 제비는 새가 아니라 식구였다. 제비는 꼭 사람 사는 집에다 자기들 집을 지었다. 어느 해는 하필 밥 먹는 자리위에 제비집을 만들어 놓고는 우리들 저녁 먹는 모..

시읽는기쁨 2009.09.19

제비가 오지 않는 땅

제비꽃은 피었는데 제비는 오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제비를 못 본지가 몇 년이 된 것 같다. 옛날이었으면 아마 지금쯤 강남에서 찾아온 제비들이 논밭 위를 날렵하게 날아다니고 마당의 빨래줄 위에 앉아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지배배 지저귀는 소리가 시작될 때이다. 시골에서 자란 중년의 연배라면 제비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사실 제비는 참새나 까치보다도 더 우리와 친근한 새였다. 그것은 사람과 동거하는 습성 때문인지 모른다. 아니면 흥부전을 통해서 은혜 갚는 새로 우리 머리에 새겨져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제비는 시골 초가집의 서까래와 벽 사이에 집을 지었다. 대부분의 새들이 사람을 두려워하건만 제비는 사람 집에 일부러 찾아들어 온다. 그런데 하필 집 짓는 곳이 사람들이 들고나는 문 위일 경우..

길위의단상 2004.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