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2

여자야, 여자야, 약해지면 안돼! / 강경주

하나. 45세의 노산老産이었다. 위로 줄줄이 딸 넷, 또 딸을 낳았다. 분만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산모는 퇴원을 서둘렀다. 아기는 병원에서 맡아서 처리하란다. 키울 마음도 없고 형편도 어렵단다. 조금 있으니 남편이 나타났다. 50세는 되어 보이는 이 택시기사 아저씨는 한수 더 뜬다. 열이든 스물이든 아들 하나 낳을 때까지 계속 아기를 낳겠단다. 그로부터 6개월 뒤 이 아주머니 또 배가 불룩하니 병원을 찾았다. 아들인지 딸인지 좀 봐달라며 턱을 세우고는 다가앉았다. 어떤 방법으로든 설득이 될 것 같지 않은 사람들. 가운을 벗어버리고 진료실을 도망쳐 나와 버렸다. 더럽고 아득한 절망감이 종일 가시지 않았다. 소름이 끼쳤다. 둘. 30대 후반의 꼽추 아주머니가 조심조심 진료실을 들어섰다. 초음파를 보니 임신 9주..

시읽는기쁨 2017.08.12

황당한 부탁

모교에서 전화가 왔다. 제자라는 사람이 나를 찾는데 전화번호를 가르쳐줘도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괜찮다고 했더니 잠시 후 벨이 울렸다. 10여 년 전에 J고등학교에서 2학년 때 담임을 했던 제자였다. 이름을 말하는데 간신히 얼굴이 기억났다. 졸업 후에는 아무 소식도 없다가 갑자기 무슨 일인가 궁금했다. 다음다음 주에 결혼을 하는데 주례를 서달라는 부탁이었다. 너무 황당했다. 고작 결혼식 두 주를 앞두고 느닷없이 전화로 주례 부탁이라니, 선생이 무슨 커피 자판기도 아니고 내심으로는 많이 불쾌했다. 몸 핑계를 댔더니 제자도 싹싹하게 전화를 끊었다. 주례를 부탁할 정도면 어느 정도는 존경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인 줄은 안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싶다. 최소한 몇 달 정도만 미리 얘기했어도 고민을 했을 것이다...

길위의단상 2012.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