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리 5

경안천 참나리

경안천을 걷는 도중에 길 옆에 핀 참나리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줄기 아래쪽에 피었던 참나리는 다 졌고, 지금은 줄기 끝에서 마지막 참나리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 참나리마저 지면 여름도 끝에 다다를 것이다. 지난 주말에 온 손주에게 빨강머리 앤 얘기를 해 줬는데 참나리를 보니 빨강머리 앤 생각이 절로 났다. 참나리도 얼굴에 생긴 주근깨 때문에 고민이 많을까. 그러나 겉모양은 절대 그런 것 같지 않다. 너무나 당당하게 자신만의 개성을 뽐내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마음씨인가. 그런 점에서 참나리와 빨강머리 앤은 닮았다. 빨강머리 앤에게와 마찬가지로 나는 참나리에게도 속삭인다. "고마워, 참나리!"

꽃들의향기 2021.08.04

강변의 참나리

어린 시절 강가에서 뛰어놀던 내 모습을 참나리는 보고 있었을 게다. 책보 던져놓고 옷 홀라당 벗고 강물로 뛰어들어 놀다 보면 어느새 어스름 저녁이 되었다. 그 강변 어딘가에 참나리는 피어 있었을 테고, 아이들 노는 걸 구경하느라 참나리 고개는 아래로 기울어지지 않았을까. 참나리는 참 당돌하지. 주근깨 얼굴이 부끄럽지도 않은지 머리털 뒤로 젖히고 활짝 드러내고 있잖아. 그 당당함이 좋다. 여름을 닮은 뜨거운 색깔은 어떻고. 참나리는 자연의 열정과 순수를 그대로 드러낸다. 참나리 앞에 서면 인간의 가식과 엄살이 부끄럽다. 장맛비도 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참나리는 씩씩하게 피어 있다.

꽃들의향기 2019.07.25

남한산성 참나리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남한산성을 산책했다. 숲에서 참나리 가족을 만났다. 참나리는 우리나라 여름을 대표하는 꽃이다. 들이나 숲, 강가 등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강렬한 색상이 여름의 뜨거운 정열을 잘 보여준다. 발랑 뒤로 젖혀진 꽃잎이며 유난히 길게 자랑스레 내뻗은 수술과 암술이 완전 도발적이다. 또, 참나리는 다른 풀꽃과 달리 키가 커서 고개를 쳐들고 봐야 한다. 참나리의 매력은 도도하고 당당한 데 있다.

꽃들의향기 2013.07.31

참나리

참나리는 고향의 유년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여름이면 마을 앞 강가에 나가 홀딱 벗고 물장난 치며 노는 것이 우리들의 일이었다. 여름이면 그 강가에 참나리가 피어났다. 초록 벌판에 키 큰 진홍빛 참나리는 강렬한 인상으로 지금도 남아있다. 당시에는 들꽃에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았겠지만 그래도 여름의 내 유년은 참나리가 늘 배경으로 등장한다. 참나리는 색깔 뿐만 아니라 발랑 뒤로 젖혀진 꽃잎이 매우 도전적이고 유혹적이다. 여름의 뜨거운 정열을 대표하는 꽃이라고 할 수 있다. 꽃잎에 새겨진 까만 반점은 사람에 비유하면 주근깨 가득한 얼굴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참나리를 보면 당당하고 개성이 강하면서도 화려하게 장식한 여인이 연상된다.

꽃들의향기 2006.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