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풀 6

틈풀(5)

틈풀에서 생명의 신비를 본다. 동시에 생명에 대해서 내가 아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걸 확인한다. 저 가냘픈 꽃 한 송이에는 138억년 우주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내 작은 머리로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서울에 나갔다가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적힌 시 한 편을 보았다. 제목이 '고맙다'다. 그래, 이렇게 살아줘서 고맙다. 회색 거리 보도블록 틈새로 싹을 틔운 잡초야 고맙다. 굴뚝 사이 잠깐 쐬는 봄볕에도 너는 진한 싹을 튀웠구나. 플라스틱 구둣발에 차이고 차여 네 푸른 살에 온통 진물 흐르고 그 상처에 딱지가 앉기도 전에 희뿌연 화학 먼지 할퀴고 지나가도 기어이 한번 살아보겠다고 몸부림하는 네가 고맙다. 잔인한 계절을 용케 견디고 나면 네 몸 어딘가에 생명의 씨앗이 맺히리라. 너도 이렇게 살아내는데 나..

꽃들의향기 2016.06.08

틈풀(4)

식물에게는 손발이 없다. 환경을 바꿀 수도, 자리를 옮길 수도 없다. 그저 주어진 조건에서 자연을 최대한 이용해 살아갈 뿐이다. 다행히 물과 공기와 햇빛만 있으면 된다.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데도 뿌리를 내리고 생존한다. 생명의 집요함이다. 저 풀은 수많은 씨앗 중 하나가 발아한 것이다. 싹도 틔우지 못하고 사라져 간 무수한 동료들의 몫을 함께 가지고 살아간다.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여도 모든 생명은 위대하다.

꽃들의향기 2016.01.26

틈풀(3)

눈맞춤 해줘서 고마워. 하루에 한 번씩 햇빛이 찾아오고, 바람이 가끔 안부를 묻지만, 사람이 가까이 온 건 처음이거든. 발소리를 듣고 처음에는 놀랐어. 혹시 날 뽑아버리려는 건 아닌가 싶어 조마조마했지. 올해 같은 가뭄도 잘 버텨냈는데 열매도 맺지 못하고 사라지는 건 속 상하는 일이잖아. 날 측은하게 바라보지는 마. 나 잘 살고 있거든. 여긴 아늑하고 포근해. 가끔 바깥세상이 궁금하긴 하지만 괜찮아. 네 따스한 눈길로 난 하루가 신날 거야. 고마워....

꽃들의향기 2015.11.13

틈풀(1)

사전에는 없는 말이지만, 생존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피어나는 풀을 '틈풀', 꽃은 '틈꽃'으로 부르고 싶다.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화려한 꽃도 많지만 시선이 오래 머무는 건 이런 작은 풀이고 꽃이다. '생명(生命)'을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살라는 명령'이다. 생명의 본뜻에 가장 충실한 게 틈꽃이 아닐까. 틈꽃은 생명에의 의지와 함께 생명체가 운명처럼 떠안은 슬픔도 보여준다. 어느 교회의 대리석 계단 틈에서 피어난 제비꽃이다.

꽃들의향기 2015.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