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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사람들

지난달에 미국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이 에미상 8개 부문을 수상했다. 10부작으로 된 이 드라마는 한국계 배우가 다수 참여했고, 전체적으로 미국에서 살아가는 동양인의 삶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였다. 호기심이 생긴 차에 넷플릭스에서 이틀에 걸쳐 몰아봤다. 미국 문화가 낯설어선지 껄끄러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런대로 재미있게 봤다. 미국 사회에서 동양인으로 살아가는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미디어를 통해서는 주로 성공한 교포의 삶이 소개되지만 밑바닥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은 주목하지 않는다. '성난 사람들'은 약자로서의 동양인의 심리에 내재한 불만과 트라우마를 잘 드러냈다고 본다. '성이 났다'는 것이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미국 사회의 틀 안에서 생기는 심리적 원인이 있다..

읽고본느낌 2024.02.08

술이 고픈 날

답답하고 짜증이 이는 날이 있다. 이런 때는 밖에 나가 걸음을 하는 것이 특효약이다. 걷는다는 단조로운 몸의 움직임이 얽힌 마음을 풀어준다. 어제도 그랬다. 방에 가만있다가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에 잡아먹힐 것 같았다. 미세먼지가 빨간색으로 경고를 했지만 밖으로 나섰다. 걸으면서 서로 다른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다. 하나는 말한다. 뭐 그런 칠칠치 못한 놈들이 있냐구. 넌 참 운도 없구나. 네가 화낼만하다니까. 다른 하나는 말한다. 잘 봐, 그런 게 아니잖아. 화가 어디에서 온 거니. 원인을 밖에서 찾으면 답이 없다고. 둘이서 실컷 싸우게 놔둔다. 얼마 지나면 자연스레 한 목소리가 사그라든다. 또한 내 안의 어린아이도 보인다. 내 의식의 심층부에는 아직 미성숙한 어린아이가 있어 내 사고와 행동을 지배한다..

길위의단상 2023.01.09

아무리 화가 나시더라도 / 김형영

여보게 친구, 아무리 화가 나시더라도 마음속의 무심한 미움일랑 꺼내진 말고 사세. 우리도 이젠 중늙은이 파도에 떠밀리는 통나무같이 세상 풍파에 이리저리 뒹굴다가 남몰래 지은 죄 많아 낯 들고 살기 쉽지 않으니 죽은 듯이 살아서 하늘이나 바라보세. 눈 침침해 앞이 잘 안 보이면 돋보기 안경을 쓰고, 안경을 써도 잘 안 보이면 눈짐작으로라도 하늘 뚫은 별자리 하나 미리 봐두세. 내일 일을 생각하여 마음속에 묻어두세. - 아무리 화가 나시더라도 / 김형영 표출하지 못하는 화가 쌓이면 화병이 된다. 특히 한국의 중년 여성에게 화병이 많다고 한다. 오죽하면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화병(Hwa-Byung)'이라는 병명까지 만들었다니 말이다. 한국의 가부장적 가족 제도나 사회 구조가 여성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했을 것이다..

시읽는기쁨 2022.11.27

할아버지는 왜 화를 내요?

"할아버지는 왜 자꾸 화를 내요?" 어느 날 손주한테서 느닷없이 받은 질문이다. 뜨끔했다. 아내에게서였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겠지만 손주는 달랐다.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 손주가 반문했다. "답답해서 그래요?" 맞았다. 조금 전 상황이 그랬기 때문이다. 질문이 이어졌다. "할아버지는 화가 날 때 참을 수 없나요?" 나는 겨우 답했다. "열에 아홉은 참고 한 번 화를 내는 거야." 옆에 있던 아내가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과 동시에 손주가 말했다. "내가 볼 때 열이면 두 번만 참고 여덟 번은 화내는 것 같아요." 옆에서 아내는 손뼉을 쳤다. 손주한테서까지 이런 말을 듣는 게 너무 창피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내가 잘못된 것이다. 아이들 앞에서는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겠..

길위의단상 2022.10.07

쌓이면 터진다

지구 내부는 여러 층으로 되어 있고 상당히 역동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 오는 정보가 제한적이어서 상세한 메커니즘은 알지 못한다. 지구 내부가 인간의 마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인간은 자신이 사는 터전은 물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많다. 지구가 지각, 맨틀, 핵으로 되어 있듯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도 의식, 전의식, 무의식으로 되어 있다. 이들의 상호작용에 대해서는 추측 수준이지 거의 무지하다. 인간이 지각의 표면만 겨우 건드렸을 뿐 마음에 대해서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무의식의 세계가 어떠한지는 지구의 내부처럼 신비에 싸여 있다. 지각 깊숙한 곳에서는 어떤 요인에 따라 온도가 올라가고 암석이 녹는다. 아마 천 도 이상으로 올라갈 것이다. 이런 마그마가..

참살이의꿈 2022.08.19

논어[329]

자공이 말했다. "참된 인간도 미워하는 것이 있습니까?" 선생님 말씀하시다. "미워하는 일이 있지. 남의 허물을 도리어 칭찬하는 자를 미워하고, 밑바닥에 깔린 사람이 윗사람을 헐어 말하는 자를 미워하고, 용감할 뿐 예법을 모르는 자를 미워하고, 앞뒤를 가리지 않으면서 숨막히는 짓을 하는 자를 미워한다." "사야, 너도 미워하는 것이 있느냐?" "남의 말을 받아서 제 것인 체하는 자를 미워하고, 함부로 하는 것을 용기인 양 여기는 자를 미워하고, 남의 잘못을 들추되 곧은 일을 하는 양하는 자를 미워합니다." 子貢曰 君子亦有惡乎 子曰 有惡 惡稱人之惡者 惡居下流而산上者 惡勇而無禮者 惡果敢而窒者 曰 賜也 亦有惡乎 惡요以爲知者 惡不孫以爲勇者 惡알以爲直者 - 陽貨 22 사제간에 쿵짝이 잘 맞는다. 우리는 군자, 어..

삶의나침반 2019.02.14

분노 사회

며칠 전 일이다. 집 앞 도로에서 좌회전 신호가 끝날 때쯤에 느릿느릿 좌회전했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차선에 대기하고 있던 차에서 창문을 열고 욕을 퍼붓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왜 날 보고 그러는지 어리둥절했다. 집 앞의 워낙 한가한 도로라 그 차와 내 차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평상시에는 황색등만 점멸하다가 출퇴근 때에만 잠시 신호등이 들어오는 도로다. 요지는 내가 신호를 어기고 좌회전을 해서 자기 갈 길을 막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충돌 위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 차는 움직이지도 않은 상태였다. 설사 잘못을 했더라도 그렇게까지 쌍욕을 들어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길거리에 나가 보면 이런 상황을 비일비재하게 겪는다. 사람들이 전부 시한폭탄을 달고 사는 것 같다. 불만과 분노로 가득하다. 어른은 말할 ..

참살이의꿈 2014.11.28

웃으면서 화내자

, 제목 때문에 가끔 생각나는 책이다. 읽지는 못했어도 특이한 제목 때문에 기억에 새겨진 책들이 있다. 이 책이 대표적이다. 웃으면서 화내는 기발한 방법이라도 있을까, 책을 펼쳐보기는 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엉뚱한(?) 내용이어서 완독하지는 않았다. 살다 보면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고' 싶을 때가 있다. 바보들에게 정색하고 화내는 건 똑같은 바보짓이다. 바보들에게는 웃으면서 화를 내줘야 한다. 얼굴로만 웃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을 날려주어야 한다. 그게 바보를 바보에 걸맞게 대하는 방법이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자!" 어제저녁부터 이 말을 중얼거리고 있다. 바보들에게 줄 선물은 이것밖에 없다. 인간이라는 게 슬퍼질 때가 있다. 비바람을 뚫고 나가며, 결국은 평..

길위의단상 2014.02.04

화를 내라, 그러나 잘 내라

내 단점은 불뚝 성질이다. 얘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큰소리를 치며 화를 내는 경우가 있다. 밖에서는 얌전한데 집 식구에게 그런다. 전형적인 졸장부의 모습이다. 전에는 잘 참아주던 아내가 이젠 같이 맞받아친다. 부부싸움으로 확전이 되기도 한다. 말투 하나에서 시작하여 집안에 찬바람이 분다. 내 불뚝 성질은 아내의 가장 큰 스트레스다. 심리학을 공부하는 아내는 내 안에 무언가 억압을 받고 있는 게 있다고 말한다. 나는 아니라고 변명하지만 속으로는 그럴 수도 있다고 인정한다. 잘못된 습관을 고치고 싶지만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게 아니어서 괴롭다. 겉으로 나타나는 것과 달리 마음은 그렇지 않는 걸 아내도 알 것이다. 따뜻이 대하고 싶은데 이상하게 말은 반대로 나온다. 어제도 작은 폭풍이 지나갔다. 아내가 외출하고 ..

길위의단상 2012.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