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 24

논어[132]

선생님 말씀하시다. "태백님은 실로 지극히 곧은 마음씨를 가진 분이었다. 천하를 세 번이나 사양하였으나 백성들은 칭송할 길조차 없었다." 子曰 泰伯其可謂至德也已矣 三以天下讓 民無得而稱焉 - 泰伯 1 주나라 태백(泰伯)은 동생에게 왕 자리를 양보하고 사람들이 모르는 곳으로 피했다. 공자는 이를 '지극히 곧은 마음씨[至德]'의 본보기로 들고 있다. 맹자는 사양지심(辭讓之心)을 예(禮)의 극치라 말했다. 북송의 범중엄(范仲淹)이 쓴 악양루기(岳陽樓記)에 이런 글이 나온다. 유교의 정신이 이 문장 안에 들어 있는 게 아닐까. 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 천하의 근심은 누구보다 먼저 근심하고 천하의 즐거움은 모든 사람이 즐거워한 뒤에 즐긴다.

삶의나침반 2015.02.28

선비가 사랑한 나무

나무 학자인 강판권 선생이 성리학의 기본 개념에 나무를 접목해 설명한 책이다. 성리학 개념에 어울리는 나무를 정하고, 관계되는 성리학자를 골랐다. 나무를 인문학적으로 이해하는 신선한 시도다. 지은이는 16가지 유교 개념에 하나씩의 나무를 배당했다. 나무, 개념, 유학자가 한 묶음을 이룬다. 옛날 중고등 학생 시절 시험 볼 때 서로 관계되는 것끼리 줄을 그어 연결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들을 섞어 놓는다면 과연 얼마나 의미가 통하게 연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나무 자체의 특징보다는 책 제목대로 선비가 사랑한 나무 정도가 맞을 것 같다. 성리학자들은 나무를 개인적인 학문과 성찰의 대상으로 삼았다. 근사(近思)의 공부 중 하나가 나무였다. 그것은 나무가 땅에 뿌리를 내리면서 하늘을 향해 살아가는 모양에서 ..

읽고본느낌 2015.02.27

아름다운 가난

"올해 초 우리 가족은 비행기를 타보고 싶다는 아들과 딸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사람이라면 한번쯤 가보아야 한다는 앙코르와트를 보기 위해 캄보디아로 여행을 떠났다. 우리 가족은 그곳에서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여행지 가운데 하나로 포함된, 물 위에 산다는 수상촌을 방문했을 때였다. 수상촌에 가기 위한 배를 타기 전, 여행가이드는 그곳 마을 아이들에게 나줘 주기 위해서 일행들에게 과자를 몇 박스 사도록 했다. 우리는 당연히 마을의 학교나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 그 과자를 기부하는 것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우리의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배가 수상촌 초입에 들어갈 즈음 그 가이드는 일행에게 과자 박스를 뜯어서 한 봉지씩 던지도록 했다. 아이들은 줄지어 '강남스타일' 춤을 추고..

참살이의꿈 2015.02.26

뭔지 모르지만

아주 아주 오래전 빅뱅이 있었대. 지금 우주에 있는 수소는 전부 그때 만들어졌지. 내 몸에 들어 있는 수소의 나이가 무려 137억 년이래. 무한대의 수명을 가진 재료로 된 육체지만 우리는 고작 백 년밖에 못 살아. 뭔지 모르지만.... 수소가 뭉쳐서 별이 되었지. 핵융합이 일어나는 내부는 원소를 만드는 공장이야. 헬륨부터 차례로 만들어졌어. 아주 오래전 큰 별 하나가 뻥 하고 터졌지. 우주의 불꽃놀이였어. 별의 물질들은 차가운 우주 공간으로 흩어졌어. 뭔지 모르지만.... 50억 년 전 어떤 요동이 있었을 거야. 태양이 생기고 주위로 행성들이 모이고 가족이 되었어. 세 번째에 지구가 있었지. 아주 아주 특별했어. 수많은 화합물이 생성 소멸하는 가운데 생명이 탄생했대. 뭔지 모르지만.... 진화의 사닥다리..

길위의단상 2015.02.24

마흔 / 최승자

서른이 될 때는 높은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지 이다음 발걸음부터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끝도 없이 추락하듯 내려가는 거라고. 그러나 사십대는 너무도 드넓은 궁륭 같은 평야로구나 한없이 넓어, 가도 가도 벽도 내리받이도 보이지 않아 그러나 곳곳에 투명한 유리벽이 있어, 재수 없으면 쿵쿵 머리방아를 찧는 곳. 그래도 나는 단 한 가지 믿는 것이 있어서 이 마흔에 날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 - 마흔 / 최승자 내 서른은 어땠고, 마흔은 어땠을까? 너무 멀리 왔다. 시인의 절망까지는 아니었어도 돌아보니 그저 신기루였을 뿐. 악착같이 매달린 걸 수록 그랬다. 내 앞에 보이는 게 허깨비인 줄 알지만, 그래도 향하여 걸어갈 수밖에 없는 게 인생. 갈증을 달래주는 한 줌의 물에 취하여, 믿는 도끼에 발등을..

시읽는기쁨 2015.02.23

논어[131]

선생님은 부드럽지만 싸늘하고, 두려우나 사납지 않고, 공손하면서도 차분하다. 子 溫而려 威而不猛 恭而安 - 述而 33 학교에 나갔을 때 선배가 한 말이 생각난다. 선생이 어떤 기분인지 아이들이 헷갈리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선생을 두려워하고 말을 잘 듣는다. 설마 공자도 그런 테크닉을 쓴 건 아니겠지. 제자들이 공자를 본 인상이 묘사되어 있다. 어떤 사람은 부드럽게, 어떤 사람은 싸늘하게 느꼈을 것이다. 위엄이 있지만 사납지는 않고, 공손하면서 차분한 모습이다. 각자의 근기에 따라 대하는 공자의 교육 방법과 일치한다. 부드러운 태도가 필요한 사람도 있고, 싸늘하게 대해야 효과 있는 사람도 있다.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대응하면 된다. 왼쪽으로 갈 때도 있고, 오른쪽으로 갈 때도 있다. 물론 중..

삶의나침반 2015.02.22

비유의 발견

좋은 책은 한꺼번에 읽지 못하고 조금씩 아껴가며 읽게 된다. 이 책이 그랬다. 일부러가 아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읽다가는 책을 놓고 생각에 잠기게 된다. 좋은 책은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에는 100개의 비유가 있다. 지은이가 다른 책에서 인용한 구절이 나오고, 지은이의 생각이 3~4페이지 정도로 적혀 있다. 원본의 비유도 좋지만 지은이의 해설에 더 무릎을 치게 된다.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의 얼굴이 내내 어른거렸다. 지은이 배상문 씨가 궁금해졌다. 책에 적힌 소개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10년이 넘도록 해마다 1,000권의 책을 읽으며 다독(多讀)이 인간의 정신과 육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른바 생체실험(?)을 해 오고 있다.' 일년에 천 권이라, 하루에 세 권을 읽..

읽고본느낌 2015.02.21

힘 빼기

어느 운동이나 배울 때는 몸의 힘을 빼라는 주의를 제일 많이 듣는다. 대개 초보자일수록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 뻣뻣하다. 그래서는 공의 궤적이 잘 나올 리 없다. 요사이는 가끔 당구를 치는데 고수로부터 어깨에 힘을 주지 말라는 나무람을 자주 듣는다. 쉬운 것 같아도 잘 안 된다. 그게 수월하게 되면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다는 뜻이리라. 머리를 깎기 위해 가는 미용실에서도 같은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누워 머리를 감을 때마다 목에 힘을 빼라는 부탁을 듣는다. 이발소에서는 엎드려서 머리를 감지만 미용실에서는 반대다. 해 왔던 것과 다르니 무의식적으로 목에 힘을 주는 것 같다. 힘이 들어간다는 건 긴장되거나 상황이 불편할 때 나오는 행동이다. 자연스럽지 못하다. 마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마음..

참살이의꿈 2015.02.20

미황사 / 김태정

열이레 달이 힘겹게 산기슭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사랑도 나를 가득하게 하지 못하여 고통과 결핍으로 충만하던 때 나는 쫓기듯 땅끝 작은 절에 짐을 부렸습니다 세심당 마루 끝 방문을 열면 그 안에 가득하던 나무기둥 냄새 창호지 냄새, 다 타버린 향 냄새 흙벽에 기댄 몸은 살붙이처럼 아랫배 깊숙이 그 냄새들을 보듬었습니다 열이레 달이 힘겹게 산기슭을 오르고 있었고 잃어버린 사람들을 그리며 나는 아물지 못한 상실감으로 한 시절을 오래, 휘청였습니다 .....색즉시고옹공즉시새액수사앙행식역부우여시이사리자아아시이제법공상불생불며얼..... 불생불멸.... 불생불멸.... 불생불멸..... 꽃살문 너머 반야심경이 물결처럼 출렁이면 나는 언제나 이 대목에서 목이 메곤 하였는데 그리운 이의 한 생애가 잠시 내 손등에 앉았다가..

시읽는기쁨 2015.02.16

논어[130]

선생님 말씀하시다. "참된 인물은 사람이 서근서근하고, 되잖은 것들은 언제나 찌뿌드드하다." 子曰 君子坦蕩蕩 小人長戚戚 - 述而 32 '탕탕(蕩蕩)'은 너그럽고 도량이 넓은 모습이고, '척척(戚戚)'은 걱정이 태산 같은 모습이라고 한다. 내 식대로 해석하면 군자는 걱정할 건 걱정하고, 걱정하지 않을 건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인은 걱정할 건 걱정하지 않고, 걱정하지 않을 건 걱정한다. 공자의 군자와 소인을 비교하는 말을 접할 때마다 나는 여지없이 소인이구나, 하는 탄식이 나온다. 어쩜 그렇게 '되잖은 인간' 부류에 딱 들어맞는지.....

삶의나침반 2015.02.15

생각의 탄생

제목을 봤을 때는 인간 지능의 진화사 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다빈치에서 파인먼까지 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13가지 생각 도구'라는 부제가 말하듯 천재를 천재답게 만드는 비법 13가지를 다룬다. 차라리 원제인 'Sparks of Genius'가 이 책 내용에 가깝다. 이라는 제목은 멋지지만 내용은 기대했던 것에는 미달했다. 이렇게 온갖 자료를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면 지루하고 요점 파악도 잘 안 된다. 정형화된 형식은 책이 말하는 천재성과는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은이는 창조를 이끄는 13가지 생각 도구를 이렇게 정리한다. 1. 관찰 "음악은 우리에게 '그냥 듣는' 것과 '주의 깊게 듣는' 것을 구분하도록 한다." -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2. 형상화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시의 ..

읽고본느낌 2015.02.14

백마산에서 양벌리로 내려오다

거의 석 달 만에 산에 올랐다. 집 가까이 있는 백마산이다. 걸어서 30분이면 입구에 닿는다. 이곳에 이사 온 지 4년이 되었는데 백마산을 찾은 것은 이번이 겨우 세 번째다. 곁에 있는 걸 너무 소홀히 했다. 경안교에서 백마산에 올랐다가 양벌리 대주아파트로 하산했다. 거기서부터는 동네를 지나고 경안천변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산길 6km에 2시간 30분, 평지길 9km에 2시간 30분, 총 5시간 걸었다. 오랜만에 밖에 나와서 힘들었으나 이 정도면 내 걸음으로는 적당한 길이다.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코스가 백마산 외에 칠사산과 국수봉도 있다. 모두 아담한 산들이다. 산만 아니라 사람 사는 마을을 지나고 강도 지난다. 움직이지 않아서 그렇지 걸으면 참 좋다. 멀리만 욕심내지 말고 가까이 있는 길을 ..

사진속일상 2015.02.13

꼰대는 되지 말자

얼마 전에 굉장히 불편한 사람을 만났다. 벽창호를 대하듯 말이 안 통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전형적인 꼰대 타입이었다. 사전에서 꼰대는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님, 아버지, 늙은이를 가리키는 말'로 나와 있다. 옛날 우리 때는 잘 썼는데 요사이 아이들도 사용하는지는 모르겠다. 꼰대의 특징을 내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1. 자기 세계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고집이 세다. 자기의 잣대로 세상과 사람을 판단한다. 자기 기준에 맞으면 옳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틀린 것이다. 흑백 논리로 내 편, 네 편을 가른다. 2. 일반적으로 보수주의자에 꼰대가 많다. 옛것과 자신의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고, 젊은 세대의 자유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젊은이들한테서 고리타분하고 고집불통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3..

길위의단상 2015.02.12

한중(閑中) / 서거정

홍진에 묻혀 백발이 되도록 살아 왔는데 세상살이 가운데 어떤 즐거움이 한가로움만 같으리 한가로이 읊고, 한가로이 술 마시며, 한가로이 거닐고 한가로이 앉고, 한가로이 잠자며, 한가로이 산을 즐기네 白髮紅塵閱世間 世間何樂得如閑 閑吟閑酌仍閑步 閑坐閑眠閑愛山 - 閑中 / 徐居正 내 구미에 맞는 시지만 딴지를 걸어보련다. 유한계급의 한가한 삶이란 여러 하인과 노예의 희생이 있어 가능한 게 사실이다. 그들의 노동과 시중이 없다면 어떻게 이런 불한당 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한가롭게 살고 싶건만 한가롭게 살 수 없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들의 시간과 돈을 뺏은 특정 계층의 여가가 음풍농월을 낳고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만들었다. 과거의 거대한 유적이나 건물을 보고 감탄하면서도 마음 한 편이 불편한 이유다. 지금 우리..

시읽는기쁨 2015.02.11

논어[129]

선생님 말씀하시다. "사치스러우면 불손하고, 검박하면 딱딱하다. 불손한 것보다는 딱딱한 것이 낫다." 子曰 奢則不孫 儉則固 與其不孫也 寧固 - 述而 31 현실적인 지적이다. 돈이 많다고 사치하면 건방지게 되고, 너무 아끼기만 하면 딱딱하고 인색해진다. 둘 다 돈을 올바로 사용하는 태도가 아니다. 그래도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인색한 편이 낫다는 것이다. 공자가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시대의 과잉 소비를 염두에 둔 건 아니겠지만, 사치한다는 것은 자원의 낭비만이 아니라 못 가진 자에 대한 배려가 아니다. 검박함은 타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미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계층의 사치는 인간 공동체를 균열시키는 원인이 된다.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을 꿈꾼 공자에게는 마땅찮은 행태였을 것이..

삶의나침반 2015.02.10

고요한 밤

하루 중 제일 귀한 시간이 한밤중에 침대에 들 때다. 자정이 지나 위층 집이 잠이 들면 주변은 완벽히 조용해진다. 아무리 귀를 쫑긋해도 들리는 소리는 없다. 마치 우주 공간에 떠 있는 듯 세상과의 연결 고리가 끊어진 것 같다. 이 시간이야말로 일상에서의 해방감으로 충만해지는 때다. 존재의 근원에 닿은 느낌 같기도 하다. 아, 나는 행복하구나, 라는 말이 절로 속삭여진다. 잡념도 사라지고 하루의 반성도 필요 없다. 그저 있는 자체로 기쁨이다. 그렇게 있다가 스르르 잠이 든다. 나에게는 하루의 소란을 잠재워 줄 이 절대 고요가 필요하다. 짧은 시간이지만 고요 속에서 낮의 어지러움이 앙금처럼 가라앉는다. 마음이 맑고 편안해진다. 내면의 침묵을 경험하는 몇 안 되는 시간 중 하나가 이때다. 바깥 핑계를 대지만 ..

참살이의꿈 2015.02.09

낭비 사회를 넘어서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계획적 진부화'를 다룬 소책자다. 대표적인 탈성장 이론가인 프랑스 철학자 세르쥬 라투슈(Serge Latouche)가 썼다. 부제가 '계획적 진부화라는 광기에 관한 보고서'다. 경제학에서 진부화란 대체로 기술적 진부화를 가리키는 말로 기술 발전에 의해 기계, 설비 등이 구식으로 전락하여 가치가 하락하는 것이다. 기술적 진부화는 과학 기술의 발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런데 인간이 고의로 조작하는 진부화가 있다. 하나는 심리적 진부화로 주로 광고를 통해 제품을 빠른 시간에 낙후하게 만드는 것이다. 유행의 변화나 사람 심리를 이용하여 휴대폰이나 자동차의 교체 주기를 빠르게 만든다. 두 번째가 이 책에서 다루는 계획적 진부화다. 계획적 진부화는 인위적으로 공산..

읽고본느낌 2015.02.08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 / 가네코 미스즈

내가 양팔을 활짝 펼쳐도 하늘을 조금도 날 수 없지만 날으는 작은 새는 나처럼 땅 위를 빨리는 달릴 수 없어 내가 몸을 흔들어도 고운 소리 나지 않지만 저 우는 방울은 나처럼 많은 노래 알지는 못해 방울과 작은 새와 그리고 나 모두 달라서, 모두가 좋아 -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 / 가네코 미스즈 가네코 미스즈(1903~1930)은 일본의 동요 시인이다. 27세로 요절한 그녀의 생애는 난설헌을 연상시킨다. 방탕한 생활을 하던 남편은 가네코의 작품 활동과 편지 왕래까지 금지시켰다. 결국 이혼하지만 남편이 자신을 괴롭히려고 딸을 데려가려고 하자 수면제를 먹고 생을 마감했다. 남동생이 보관하던 유고집이 발견되어 그녀의 시가 세상에 드러났다. 작고 여린 것에 대한 사랑과 안타까움을 노래하는 가네코의 시는 순수한..

시읽는기쁨 2015.02.07

논어[128]

선생님의 병이 깊어지자 자로가 빌게 해달라고 청을 드렸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그런 것이 있을까?" 대답하기를 "있습니다. 비는 글에 '너를 천지 신명께 비노라' 하였습니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나도 그런 기도를 드린지는 오래다." 子 疾病 子路 請禱 子曰 有諸 子路對曰 有之뇌 曰禱爾于上下神祈 子曰 丘之禱久矣 - 述而 30 스승의 병이 깊어지자 자로는 안절부절못했다. 자로의 성격으로 보건대 스승의 병을 고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로가 한 청은 무속적인 신앙에 근거한 기도 의식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공자는 인간의 일상사에 간섭하는 신적 존재를 믿지 않았다. 합리적인 공자가 그런 타력에 기댈 사람이 아니다. 공자는 추상적 관념의 세계보다 땅에 기반을 둔 현실주의자였다. 그래서..

삶의나침반 2015.02.06

기원 풍경

퇴직 후에 다시 취미를 붙인 게 바둑이다. 예전에는 직장에서도 쉬는 시간에 바둑을 두곤 했지만, 인터넷 바둑이 성해지고 근무 환경이 빡빡해지면서 바둑판이 없어졌다. 그 뒤 10년 정도는 바둑 둘 기회가 없었다. 인터넷 바둑은 바둑 두는 맛이 나지 않고 체질에도 맞지 않아 가까이하지 않았다. 직장에서 나온 뒤에 우연히 바둑 모임을 하나 알게 되어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만나 바둑을 둔다. 오전 11시에 시작하여 바둑 두고, 점심 먹고 다시 들어가 저녁때까지 즐긴다. 그런데도 하루 이용 기료가 2천 원이다. 이러고도 장사가 될까 싶어 걱정될 정도다. 그러나 워낙 대규모다 보니 수익이 나는 모양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기원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옛날에는 젊은이들도 많았는데 지금은 온통 노인들이다. 기원에서..

사진속일상 2015.02.05

한 장의 사진(20)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잊히지 않는 사진 한 장이다. 아폴로 우주선이 달 탐사에 나섰던 1970년대에 찍은 사진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40여 년쯤 전일 것이다. 위치로 볼 때 달 궤도를 도는 우주선에서 찍은 것 같다. 사진의 구도는 단순하다. 달 지평선이 화면을 1/2로 가르고 그 위에 지구가 떠 있다. 달은 회색이고 하늘은 새까만데 지구는 푸른색으로 반짝인다. 흰 구름이 있고, 대륙 모양도 보인다. 태양은 머리 위에서 약간 뒤쪽에 떠 있다. 이 한 장의 사진이 준 충격이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는 외계로 나가 지구를 본 것이 처음이었다. 물론 지구가 어떻게 보일지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실제 사진을 통해 본 지구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우주의 보석과 같았다. 우리가 아는 한 이 넓은 우주에서 ..

길위의단상 2015.02.04

풍년화

희한하게 생긴 꽃이다. 종이테이프 같은 꽃잎이 꼬불거리며 말려 있다. 전체적으로는 매우 어수선해 보인다. 한겨울에 핀 풍년화를 천리포수목원에서 보았다. 붉은색과 노란색 꽃이 한 나무에 피어 있었다. 이름이 하필 풍년화(豊年花)인지 고개가 갸웃해진다. 나무나 꽃의 특징이 전혀 드러나지 않아서다. 이 꽃이 일찍 피거나 화려하게 피면 풍년이 든다는 전설이 따를 법하건만, 우리나라에 들어온 게 그리 오래되지 않으니 신빙성이 없다. 어찌 됐든 겨울 한가운데서 만난 신기한 꽃이었다.

꽃들의향기 2015.02.03

가령과 설령 / 박제영

가령 이것이 시다,라고 쓴 대부분의 것은 시가 아니다 설령 이것이 시가 되지 않더라도,라고 씌어진 것은 대부분 시다 가령(佳嶺)은 도처에 있다. 가령 화사하고 화려한 것, 가령 사랑이란 단어, 가령 그리움이란 단어, 봄날 꽃놀이 관광버스가 가 닿는 곳, 그곳이 가령이다. 설령(雪嶺)은 보이지 않는 자리에 스며 있다. 어둡고 춥고 배고픈, 눈과 귀와 혀의 뿌리, 설령 어시장 좌판이라도, 설령 공중화장실이라도, 설령 무덤이라도, 설령 보이지 않더라도, 그곳에 있다. 등반자여 혹은 동반자여 가령은 도처에 있고 설령은 도무지 없다 도대체 어디를 오를 것인가 - 가령과 설령 / 박제영 재미있는 시다. 시인은 언어의 연금술사다. '가령'과 '설령'이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시가 되었다. 시인의 조어는 살아가는 본령을..

시읽는기쁨 2015.02.02

논어[127]

선생님 말씀하시다. "성인이니 사람 구실이니는 생각조차 할 수 없고, 그저 배우기를 싫어 않고 깨우쳐 주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고나 해 둘 정도지!" 공서화가 말했다. "그나마도 저희들은 본받을 수 없습니다." 子曰 若聖與仁 則吾豈敢 抑爲之不厭 誨人不倦 則可謂云爾已矣 公西華曰 正唯弟子不能學也 - 述而 29 공자의 솔직한 자기 평가다. 성(聖)과 인(仁)의 경지를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건 공자의 겸손이 아니라 사실을 표현한 진솔한 말일 것이다. 완전인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모습을 공자에게서 본다. 공자는 자신을 항상 '배우는 사람[學人]'으로 지칭했다. 이 정도 말도 대단한 자신감이 없으면 할 수 없다. '배우기를 싫어 않고 깨우쳐 주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만큼 공자를 잘 나타내는..

삶의나침반 2015.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