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의 입장에서 보면 사물에는 귀천이 없다.
물건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는귀하고 상대는 천하다.
세속의 눈으로 보면 귀천은 능력 차이 때문이 아니다.
차별의 관점에서 볼 때는
조금 크니까 큰 것이라면
만물은 크지 않은 것이 없고
조금 작으니까 작은 것이라면
만물은 작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하늘과 땅을 쌀 한 톨이라 할 수도 있음을 알고
터럭 한 올을 큰 산이라 할 수도 있음을 안다면
차별의 이치가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以道觀之 物無貴賤
以物觀之 自貴而相賤
以俗觀之 貴賤不在己
以差觀之
因其所大 而大之
則萬物莫不大
因其所小 而小之
則萬物莫不小
知天地之爲제米也
知毫末之爲丘山也
則差數覩矣
- 秋水 4
우리 인식의 상대성에 대한 변주가 계속 울리고 있다. 유무(有無), 시비(是非), 대소(大小), 고저(高低), 귀천(貴賤) 등의 개념은 보는 관점이나 입장의 차이에 따라 달라진다. 사람마다, 사회마다, 때나 장소에 따라 기준 잣대가 다르다. 이 시대에 옳은 것이 다른 시대에는 그른 것이 된다. 여기서 그른 것이 다른 곳에서는 옳은 것이 된다. 절대적 기준이 무엇인가? 없다. 그것은 물리학에서 뉴턴의 절대적 시공간으로서의 기준틀이 부정된 것과 비슷하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상대성의 세계다.
중요한 것은 상반되어 보이는 이러한 것들이 서로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 그 반대의 속성이 필요하다. 그것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 한 몸체를 이루는 것과 같다. 그림자는 빛에 의존하지만그림자 없는 빛 역시 상상할 수 없다. 도의 입장에서 보면 이 둘에 가치의 우열은 없다. 이를 장자는 만물제동(萬物齊同)이라고 불렀다. 옳음만 따르고 그름을 없애려고 한다면 이는 하늘만 따르고 땅은 없애려는 것처럼 어리석다. 이것이 천지의 이치다.